천자문 대신 ‘문어’를 익힌 호기심 많은 소년  서당 다니던 18세 소년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주 희미했다. 소년은 세 살 무렵 아버지를 잃고 코밑이 거뭇해질 때까지 숙부의 그늘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서당에 다니며 글을 배우던 소년 앞에 숙부가 작은 칼과 문어를...
쪽빛 옷깃에 스민 차(茶)의 향기  초의(草衣)는 말 그대로 ‘풀을 엮어 만든 의복’을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누리는 무위자연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승려로 ‘차(茶)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을 통해 우리 차의 탁월함을 노래했다. 동다송은 그의 나이...
오후 1시 무렵, 데구르르 공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볼링장을 채운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순천 볼링 동호회 <하늘동호회>의 연습이 있는 날이다. 회원 대부분은 연세 지긋한 분들이다. 무거운 볼링공이 몸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매주 이렇게 모여 연습을 해온지도...
"내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롤랑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 中-  평온한 일상에 찾아온 균열,  ‘카눈, 볼라벤, 덴빈, 산바…’ 이들 단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가슴을 졸였다. 직장인은 지하철 역사가 물에 잠겨 회사에 지각할까봐 근심했고, 중년...
포뮬러1 그랑프리, 영암을 향해 달리다  경기장 입구에 이르기 전부터 살갗을 두드리는 진동에 온몸의 감각이 쭈뼛 선다. 대기조차 그 들뜬 열기에 젖어 버린 것인지 가쁜 활기가 감돈다. 스탠드 위로 서자 차의 궤적이 남긴 잔상이 시야에 머문다. 시원하게 내달리는 그 굉음에 정신마저...
Interview with 정형용 물과 빛, 흙이 한데 어우러진 청년 도예가의 작업실. 흙이 말라 붙은 붉은색 전화기는 요란한 벨 소리를 잊은 채 과묵하기만 하다.작업실 한편에 놓인 라디오 역시 젊은 도예가와 함께 한 시 간을 증명하듯 곳곳에 흙손자국이 남아 있다. 흙을 반죽해...
홀로 떠나는 여행 ‘담양’ 편  산들산들, 가볍게 걷고 걸어서  322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자라난 대나무들이 시야를 가로지른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대나무 들의 행렬은 길 저편으로 구부러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울창한 이파리만큼이나 무성한 그림자 사이로 길 잃은 햇빛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