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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사이로 나부끼는 고요한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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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나는 여행 ‘담양’ 편 

산들산들, 가볍게 걷고 걸어서 

322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자라난 대나무들이 시야를 가로지른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대나무 들의 행렬은 길 저편으로 구부러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울창한 이파리만큼이나 무성한 그림자 사이로 길 잃은 햇빛 몇 조각이 떠다닌다. 마음에 인 박힌 도시의 소음은 그 사이에 묻혀 버리고, 길에는 오직 고요만이 머문다. 가볍게 발을 내딛자 우수수수- 쏴아아아- 바람결을 따라 대나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이어진다. 

여행의 첫걸음이 머문 곳은 담양을 대표하는 여행지인 죽녹원(竹綠苑). 죽녹원은 2003년 조성된 대나무 숲으로 약 31만㎡에 이 르는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대나무들은 가볍게 산책을 하며 나란히 걸으면 좋을 정도의 야트막한 높이다. 죽녹원 하나에도 무려 8개의 길이 존재한다. 친구랑 같이 걷는 ‘죽마고우길’, 한 번 걸으면 한 해의 좋은 운세를 10년으로 늘릴 수 있다는 ‘운수대통길’, 혼자 여행 온 솔로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사랑이변치않는길’ 등 죽녹원은 다양한 이름으로 여행객을 맞는다. 산책로 중간 중간에는 벤치와 정자가 있어 쉬엄쉬엄 걷기에 그만이다. 

길을 자연스레 따라가다 보면 죽녹원 뒤편에 위치한 죽향문화체험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은 유명 한옥과 정자가 세워진 대규모 한옥 마을로, 길을 따라 늘어진 한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관광객들을 위해 한옥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죽향문화체험마을을 가로질러 쭉 걷다 보면 또 다른 입구에 도착한다. 죽향문화체험마을은 죽녹원과 이어져 있긴 하지만 두 곳 모두 별도의 매표소가 있다. 죽향문화체험마을 입구에서 메타세콰이어 길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그래서 죽녹원을 둘러본 다음 죽향문화체험마을을 통과해 바로 메타세콰이어 길로 접어드는 사람도 많다. 두 다리의 튼튼함을 자부한다면 힘차 게 이곳까지 걸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대나무숲 옆 미술관 

죽녹원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강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살을 따라 걷다보면 조금은 독특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마치 거대한 상자 두 개를 포개 놓은 것 같 은 건물 입구에는 ‘대담 미술관’이라는 심상치 않는 글귀가 빛난다. 이런 곳에 웬 미술관인가 싶어 호기심을 품고 문을 열자 은은한 커피향이 밀려온다. 전신을 휘감는 그윽한 커피향에 취 하는 것도 잠시, 곳곳을 물들인 독특한 감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담’은 이미 카페로 명성이 났지만, 사실 카페보다 아트센터에 가깝다. 물론 대담 안에서 는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대담이라는 공간은 카페라는 이름으로 만 인식하기에는 무언가 표현의 한계가 있다. 

카페 뒷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자 대담의 진면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건물 뒤편으로 무심 코 지나친다면 발견하지 못할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 지난날에는 벽을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살았을 집들이 예술작품이자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한 귀퉁이를 거닐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착각까지 든다. 

★ 대담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는 팥빙수.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수북한 떡고물과 따로 나오는 견과류 토핑이 압권이다. 무더운 여름은 이미 지났지만 한번쯤 맛볼 만하다. 

50년을 지킨 칼칼하고 시원한 그 맛 

▲ 의 멸치국수. 비빔국수와 마찬가 지로 3,500원. 약계란은 1,000원이다.

▲ <진우네집 국수>의 멸치국수. 비빔국수와 마찬가 지로 3,500원. 약계란은 1,000원이다. 

대담을 둘러보고 다시 걸음을 옮길 때쯤 어느새 시장기가 돈다. 금강산도 식후 경이라고 즐거운 여행에 맛있는 음식이 어찌 빠질 수 있겠는가. 죽녹원 앞 강변에 는 유명한 국수집이 있다. 이름 하여 <진우네집 국수>. 이 국수집은 담양에 터를 잡고 장사를 해온지 무려 50년이나 된다. 반백년이라는 시간동안 사랑 받아온 진 우네집은 이제는 담양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죽녹원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있는 국수거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날씨가 화창해 강변을 따라 놓인 대나무 평상 위에 자릴 잡았다. 주 메뉴는 매콤 한 비빔국수와 칼칼한 국물이 일품인 멸치국수, 또 온갖 한약재와 함께 푹 삶아낸 약계란이다. 나무 그늘과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은 국수의 깊은 맛을 더한다. 시 원한 국물을 맛보고 싶어 멸치국수를 주문한 후 아쉬운 마음에 약계란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국수의 면은 소면보다 두껍지만 질기지 않고 부드러웠다. 면발을 국 물과 함께 들이키니 후루룩 깔끔하게 잘 넘어간다. 약계란 역시 한약재 특유의 깊 은 향이 겹쳐져 한 결 고소한 맛으로 여행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가뿐하게 국수 한 그릇을 깔끔히 비우고 나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허기졌던 배가 어느 새 훈훈한 포만감으로 차오른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서 보이는 풍경

또다시 흐르는 강물을 따라 힘차게 걸었다. 죽녹원 앞을 흐 르는 강을 따라 길은 곧게 뻗어 있다. 강변을 따라 심긴 가 로수 아래를 걷다보면 가수 장재인의 노래 ‘가로수 그늘 아 래 서면’이 무심결에 들려오는 것 같다. 이 길은 가볍게 걸 을 만한 순박한 길이지만, 그 안에 품은 역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관광제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거리에는 조선 인조 때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심겨진 나무들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몇 백 년 동안이나 오가는 이 들을 맞았을 길옆에는 이제 곧 추수할 벼들이 누런 파도를 일으키며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로수 길목 끝에 이르러 도로 하나를 가로지르면, 바야흐 로 메타세콰이어 길 입구에 도착한다. 탁 트인 입구 양 옆으 로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세월의 잔상을 그리며 줄줄이 늘 어서 있다. 길을 따라 걷자 진한 나무향이 코끝을 스친다. 한겨울에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는 초록 잎은 말없이 하늘 을 끌어안은 채 여행객을 맞는다. 입장료는 1000원. 과자 한 봉지 값에 푸른 사색을 즐길 수 있으니 과히 나쁘지 않다. 메타세콰이어 길을 따라 걸으면 삼림욕장 안에 들어선 것처 럼 신선한 공기가 느껴진다. 길 양 옆으로 끊임없이 늘어선 나무들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수채화처럼 눈가에 싱그러운 초록빛이 번진다. 서둘러 걷는 것보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느리게 걷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폭신한 길이다. 

가을날 만나는 곰돌이 어떠신가요? 

이 세상에 테디베어를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동그란 얼굴 에 푹신한 몸, 세상 모든 것을 말갛게 바라보는 조그마한 눈. 남녀노 소 할 것 없이 한 번쯤은 그 깜찍한 외모에 푹 빠져 본 적이 있을 것 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담양에 테디베어 박물관 ‘테지움 테마파 크’가 문을 열었다. 

테지움 테마파크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끝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등치를 자랑하는 테디베어들이 방문객을 맞 이한다. 전시관마다 테디베어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얼굴을 내민 다. 세기를 풍미했던 비틀즈나 우리에게 익숙한 무한도전 멤버, 역 사 속 인물들도 있다. 물론 당장이라도 껴안고 싶은 그 앙증맞은 외 모는 여전하다. 

테디베어 박물관을 지나면 2층 트릭아트 전시관이 나온다. 트릭아 트는 각도의 절묘한 차이를 통해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그림을 말한 다. 이곳에서는 ‘손대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카메라는 필수품이다. 작품 앞에서는 중간 중간 웃음이 터져 나온 다. 관람객들은 스스로가 작품 그 자체가 된다. 온 몸으로 작품 안에 섞여드는 특별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대나무통에 담긴 만 원의 행복 

걷고 걸어 다시 죽녹원 앞으로 돌아왔을 무렵,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쉬지 않고 돌아다 닌 탓에 벌써 뱃속에서는 밥 달라는 아우성이 들 려왔다. 때마침 강변 너머로 ‘죽녹원 첫집’이라 는 글귀가 번뜩 들어왔다. 스스로 원조임을 자부 하는 집들이 많아 특별할 게 없었지만, 가게 간 판에 유독 커다랗게 새겨진 ‘1자’가 관심을 끌었 다. ‘맛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찰나, 마침 식당 을 빠져나온 사람들의 포만감 어린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자 어느새 두 발은 죽녹원 첫집으 로 향했다. 

죽녹원 첫집에서 자랑하는 메뉴는 바로 대통 밥. 한 상에 만원이다. ‘첫집’이라고 자부하는 만 큼 그 맛은 어떨지 기대를 품고서 메뉴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상 위에 차려지기 시작한 식사. 그런데 상을 가득 채우는 반찬의 가짓수를 보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양념을 발라 구운 고등어구이, 돼지목살구이 쌈, 생으로 양념에 버무린 죽순 회 등 퀼리티가 도저히 만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대망의 주인공은 대통밥. 대통밥은 잘라 놓은 대나무에 오곡밥을 집어넣고 한지로 입구를 막아 지어 낸다. 한 공기 분량으로, 씹을 때마다 배어나오는 은은한 죽향이 일품이다. 

떡하니 벌어진 이 한 상이 단 10,000원이라니
▲ 떡하니 벌어진 이 한 상이 단 10,000원이라니 

백년의 시간을 견딘 고택에서의 하룻밤

은은한 대나무향이 입안에 여운으로 남을 때쯤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늦장을 부 렸다가는 더 늦어질 것 같아 터미널에 들러 창평 면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탄지 15 분. 창평 한마음 노인전문병원 앞에 내렸다. 그러 자 조용한 시골 마을 사이로 당당한 풍채를 자랑 하는 한옥 한 채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곳이 바로 담양 창평면에 위치한 ‘하심당(下心堂)’ 게스트 하우스. 무려 150년이 넘은 고택을 게 스트 하우스로 개조한 곳이다. ‘마음을(心) 내려놓 고(下) 머무는 곳(堂)’이라는 그 의미처럼 고즈넉 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게스트 하 우스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인자한 얼굴로 맞아주 셨다. 

대충 짐을 풀고 나자, 사장님은 기다렸다는 듯 대청마루로 나를 불러내셨다. 챙겨주신 고무신을 신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대청 마루에 딸린 다실에 앉아 차를 따르고 계셨다. 하심당을 찾는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다실에서 준비된 차를 맛볼 수 있다. 뽕잎차, 연근차, 삼합차 등 차들 대부분은 하심당 사장님이 유기농으로 직접 재배한 것이다. 숙박객이 아닐 경우 차를 마시려면 5000원 씩 지불해야 하지만, 숙박객은 얼마든지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차를 몇 잔이나 마셨을까. 잊고 있던 피로가 고개를 내밀었다. 바쁘게 돌아다닌 하루라서 졸음이 일찍 몰려왔다. 밤 인사를 건네 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실을 빠져나와 마당으로 향하는 순간 영롱하게 빛나는 별무리가 시야를 뒤덮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밤하늘.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이야. 

하심당은 흔히 휴식과 치유의 숙박처로 불린다. 일상에 쫓겨 몸도 마음도 잠시 쉬고 싶을 때 한옥의 품을 찾은 이들은 그 포근 함에 감탄하고야 만다. 하심당에는 백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온 한옥만이 간직할 수 있는 차분함과 고요함이 존재한다. 무늬만 한 옥으로 개조한 한옥민박이 아닌, 진짜 한옥에서 잠들고 싶다면 하심당의 문을 두드려보길. 

▲ 하심당 게스트 하우스 전경. 하루 숙박비는 1인당 20,000원이다
▲ 하심당 게스트 하우스 전경. 하루 숙박비는 1인당 20,000원이다 

수북해서 수북회관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창호지 너머로 번져오는 잔잔한 햇살을 맞으며 눈을 떴다. 흙집에서 자고 일어나서인지 몸이 한결 가뿐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산뜻한 아침. 소 음에 쫓겨 가까스로 일어나야 했던 도심에서는 맛보지 못한 청량감이 밀려왔다. 하 룻밤을 편히 쉬었으니 이제 다시 담양 터미널로 돌아갈 때였다. 하심정이 있던 창평 시골 마을에서 담양으로 향하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시골 정류장에서 고즈넉하게 버스를 기다리다가 다시 담양으로 향했다. 

담양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수북회관의 ‘꿀꿀갈비’가 그것이다. 꿀꿀갈비를 맛보기 위해 담양터미널에서 수북면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북면은 담양 시내에서 멀지 않아 자가용을 이용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차량 없이도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의 거리이니 주저할 필요는 없다. 

수북면에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수북회관이 보인다. 자리를 잡으니 금세 상을 차려준다. 꿀꿀갈비는 1인분에 1만2천원. 직접 구워 먹는 게 아니라, 이미 구워진 채로 갈비가 상에 오른다. 고기 표면에 수북회관의 특제 양념이 얇게 배어 있어 윤기가 그야말로 좔좔 흐른다. 거기다가 바삭하고 야들한 식감이 미각을 자극한다. 짜지도 느끼하지도 않게 간이 잘 배어 있어 순식간에 1인분 을 뚝딱 먹어치웠다. 아침부터 주리던 배가 신나는 환호성을 지른다. 밑반찬은 평범하지만 한 접시에 가득 나오는 고기의 양은 실로 푸짐하다. 혹자는 이 광경을 보고 갈비를 수북하게 얹어줘서 수북회관이냐고 묻지만, 수북회관은 어디까지나 수북면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대나무, 그 알파와 오메가

수북면에서 식사를 마치고 다시 담양터미널로 향했다. 대나무 사이를 거닐고 대나무를 이용한 음식을 먹었으니 이제는 대나무를 살펴볼 차례. 담양터미널에서 나와 동산병원 쪽으로 걸으니 저 멀리 ‘한국대나무박물관’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한국대나무박물관은 담양의 대나무 문화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테마 별로 나뉜 전시공간에서는 담양의 죽공예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안을 관람하다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대나무를 사랑했는지 새삼 깨닫는다. 전 시실에는 죽세공품 경진대회에서 상을 수상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하나 같 이 창의성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대나무 박물관은 그 주변이 하나의 공원처럼 조 성되어 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위한 소풍 장소로 인기가 많다. 관람료는 어른 1 천원, 청소년 및 군인은 700원, 어린이는 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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