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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언어로 별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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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언어를 간직한 도예가 정형용

Interview with 정형용

물과 빛, 흙이 한데 어우러진 청년 도예가의 작업실. 흙이 말라 붙은 붉은색 전화기는 요란한 벨 소리를 잊은 채 과묵하기만 하다.작업실 한편에 놓인 라디오 역시 젊은 도예가와 함께 한 시 간을 증명하듯 곳곳에 흙손자국이 남아 있다. 흙을 반죽해 지문이 닳을 만큼 숱한 손질로 빚어낸 도자 작품들. 흙의 언어를 통해 청춘이란 별을 노래하는 정형용 도예가. 차를 즐기는 그의 아늑한 찻자리를 찾아 ‘도예가 정형용’과 ‘사람 정형용’에 대해 얘길 나눴다. 지난 겨울 처음으로 정형용 도예가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고서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차일피일 기사 작성을 미뤘다. 남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를 소개하겠다는 버리지 못한 욕심과 지난 일에 대한 미안함을 품고서 두 번째 인터뷰에 나섰다. 

이번이 두 번째 인터뷰인데 그동안 연락이 없어 서운하지 않았나요? 기다려진다거나. 

(웃음)사실 깜박 잊고 있었어요. 그냥 그렇게 잊어버려야 복잡해지지 않아요. 일일이 기억하고 있으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요. 저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만 떠올리려고 노력해요. 

두 번째로 묻네요. 그동안 ‘도예가’라는 길을 걸으면서 고민은 없었나요? 대부분 자신의 길에서 서둘러 성공하고 싶어 하는데, 도예가는 좁고 느린 길이잖아요. 

아마 첫 전시회를 열기 전이니까 4년 전 일 거예요. ‘이거는 안하고 다른 일을 해 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가 고비였죠. 직장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서 경제적으로 또래에 비해 많이 뒤처지니까요.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역시 이거다’ 싶어 첫 전시회를 열었어요.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까 ‘아! 내가 이걸 잘 하는가 보다, 더 밀고 나가자.’라는 마음이 생겼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언제부터 도예가가 되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학과를 전공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냥 막연히 그곳에 가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겠거니 생각했어요. 

평소 차를 즐겨 마신다고요? 차를 좋아 하게 된, 다구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차생활(다도)을 하셨어요. 벌써 30년이 넘으셨죠. 그런 집안 분위기가 제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차를 마시다보니 예전보다 몸이 건강해졌고, 본래 성격이 가진 단점들도 많이 극복하게 되더라고요. 긍정적으로 변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차를 더욱 즐기게 됐죠. 그러면서 차와 관련된 다구를 직접 작품으로까지 만들게 됐어요. 

그럼 언제부터 다구(茶具)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대학교 졸업하고부터니까 7-8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 때 특별히 추구하는 점이 있다면? 

전 제가 직접 만든 다기를 차생활에 많이 활용해요. 제 경우에는 다기를 만드는 사람도 되고, 차를 마시는 사람도 되거든요. 다기가 불편하면 한두 번 쓰고 안 쓰게 되요. 그래서 차 마실 때마다 늘 꺼내놓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바람, 구름, 물고기 등을 형상화한 작품이 많던데요. 

찻자리는 자연에서 가져온 것들을 즐기는 자리잖아요. 찻잎도, 물도, 흙으로 빚은 다구들도 그렇죠. 사람들은 대부분 쳇바퀴 돌 듯 쉼 없이 일상을 살아가죠. 그래서 차 마실 때만큼은 꽃과 바람 같은 자연과 함께 하라는 의미에서 자연을 형상화한 문양을 작품에 많이 반영해요. 

이 일의 매력이라면? 

이 일의 매력은 장작가마를 사용하는데 있는 것 같아요. 가스가마는 일률적으로 아래서부터 위까지 비슷한 톤으로 도자기들이 구워져 나오거든요. 반면에 장작 가마는 불을 쐰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도자기 빛깔이 다르게 나와요. 같은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라도 가마 자리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죠. 

내 마음에서 이건 세상으로 내보내도 되겠다, 라고 확신이 들 땐 언제에요? 

그건 도자기가 다 구워져 나왔을 때 알 수 있어요.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라고 중얼거리면서 깨뜨리는 경우도 있고, 금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때로는 이건 내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정말 잘 나왔구나, 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죠. 

기대하던 작품이 탄생하지 않아서 깨뜨려야 할 때 마음은 어때요? 

그야 당연히 아프죠. 아프긴 해도 어쩔 수 없어요.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가끔씩 팔지 않고 집에서 화분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작품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갤러리나 박물관 다니는 걸 무척 좋아해요. 어느 때는 일주일 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요. 지난해 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접시에 구름이 새겨진 백자 향꽂이를 봤거든요. 그걸 보면서 화로에 대한 영감을 떠올렸죠. 그렇게 종종 이전 시대의 작품들을 보면서 저만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세 번째 전시회는 어디서 모티프를 얻었나요? 

이번에는 도자기 선에서 엿볼 수 있는 아름다움에 주목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3분의 1정도 작업을 해놨는데, 기교가 지나친 느낌이 들어서, 나머지 작업들은 기교를 좀 더 자제하고 단순함 쪽으로 가려고 해요. 

물레를 돌려 차호를 빚고 있는 정형용 도예가.
진흙이 잔뜩 말라붙어 있는 전화기. 
오는 11월 세 번째 전시회에서 선보일 작품들. 

세 번째 전시회는 어디서 열죠? 

11월 넷째 주 수요일, 광주 예술거리에 있는 대동문화갤러리에서 해요. 

내 작품의 차별성이라면 어떤 점이 있죠? 자기자랑 좀 해 주세요~ 

전 전부 수작업을 해요. 다관 하나를 만들려면 백번 이상의 다듬는 손길이 필요 해요. 틀에 넣어 일률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 손을 거치면 좀 더 꼼꼼하게 신경 쓸 수 있거든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지금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아 있는 게 몇 점 안돼요. 팔기 싫어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할 때가 많아요. 그래도 내가 만든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니까 한편으론 뿌듯하고 마음이 놓여요.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은 뭐가 있죠?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예술 전선에 나가보면 다들 피터지게 노력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젊어서는 고생을 좀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라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차도구와 관련된 수요가 많지 않아요. 차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죠. 그래서 그런지 제 주위의 젊은 도예가도 제가 유일해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만족하게 되거든요. 그때마다 젊은이들이 더 많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려요. 

그렇더라도 누군가는 남도를 지켜야 하잖아요. 

고향을 떠나는 젊은 예술가들을 마냥 나무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곳에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기반이 안 돼 있으니까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거죠. 저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는 거니까 뭐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젊은 예술가들이 발붙일 여건이 되지 않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죠. 

진흙을 반죽해 차호를 만드는 과정.
소나무로 불을 떼는 장작가마
완성된 차호. 
▲ 2011년 겨울 처음으로 만났던 정형용 도예가. 

‘청춘’이란 별을 노래하는 사람, 정형용 

아버지(몽평요의 정철수 선생)께서 분청 사기 만드는 분으로 유명하시잖아요. 아 버지 명성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가끔씩 누구 아들이라는 게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그렇다고 부모님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냥 똑같은 작가로 동등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께서 평소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하시는지. 

자기만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저희 부자는 서로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요. 각자의 작품에 대해 말하게 되면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말을 아끼는 편이에요. 

작품 활동과 연결되지 않는 정말 일상적인 취미는 뭐가 있죠? 

음악 듣는 거 좋아해요. 모던락을 즐겨 들어요. 페퍼톤즈,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이런 밴드들의 음악을 즐겨 들어요. 또 검도를 좋아해요. 정적인 활동을 하다보니 활동적인 게 필요하더라고요. 덕분에 여기저기 멍투성이지만요.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지금은 독립하는 게 가장 큰 소망이에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저만의 자리가 생기면 내가 원하는 작업 방식이 이거구나,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 같아요. 

이제 삼십대 중반이잖아요. 도예가가 아닌, 사람 ‘정형용’으로서의 바람은? 

우선은 독립을 하고, 결혼 하는 거.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서 정착했으면 좋겠어요. 

첫 인터뷰에서 배우자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래 예술가들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잖아요. 어떤 여성을 찾고 있나요? 

예전 우리 선조들은 도자기를 분업화해서 만들었거든요. 물레 돌리는 사람, 다듬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서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같은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럼 ‘나는 이런 남자다’라고 본인을 소개한다면? 

전 사실 농담을 잘 못해요. 말을 쉽게 하지 않는 편이라서 인기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은 농담을 잘해야 인기가 많잖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개그콘서트,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챙겨 봐요. 하지만 역시나 제 장점은 한사람에게 충실하고, 제 일에 성실하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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