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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특별한 그들의 스트라이크 

순천 시각장애인 볼링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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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무렵, 데구르르 공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볼링장을 채운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순천 볼링 동호회 <하늘동호회>의 연습이 있는 날이다. 회원 대부분은 연세 지긋한 분들이다. 무거운 볼링공이 몸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매주 이렇게 모여 연습을 해온지도 벌써 5년이 되어 간다. 오랜 시간동안 연습으로 다져진 그들의 실력은 이미 프로급. 잘 굴러간 공이 시원하게 스트라이크를 선보인다. 회원들이 입고 있는 노란 유니폼은 땀과 열정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실력과 열정을 지닌 하늘동호회 회원들에게는 단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모두들 장애 1~6등급 판정을 받은 시각장애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앞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힘차게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볼링을 할까. 하늘동호회를 처음 접한 이들이라면 분명 한 번쯤 떠올릴 의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시각장애에 대해 한 번 더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시각장애 하면 아예 앞을 못 보는 상태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시각장애 1급인 전맹에 해당한다. 비교적 장애도가 덜한 저시력(앞은 보이나 시력이 굉장히 떨어져 형체 분간이 힘든 경우)의 경우, 충분한 교육과 연습을 거치면 혼자서도 자유롭게 볼링을 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늘동호회에서 저시력 장애인들만 볼링을 치는 것은 아니다. 앞이 아예 보이지 않는 전맹 장애인들 또한 지지대에 의지해 볼링 라인을 누빈다. 한 손에는 공을, 한손에는 지지대를 잡고 거리를 가늠한 다음 시원하게 공을 굴리는 그들의 모습은 몇 사람만 제외하고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지금은 신나게 볼링을 치는 회원들이지만, 그들의 시작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수의 시각 장애인들은 운동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전적으로 보호자에게 의지했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았고, 활동 반경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2008년에 우연히 부산에서 보호자 없이 시각 장애인 점자 볼링동호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의 하늘동호회 김영래 회장을 비롯한 몇몇 시각장애인들은 호기심에 견학을 할 겸 볼링대회로 향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시각장애인들도 얼마든지 볼링을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 당시 전라남도에는 볼링동호회가 한곳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각장애인 볼링동호회 <하늘동호회>는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지금과 같은 전문적인 교육이나 별다른 지원이 없었다. 볼링을 원하는 몇몇 사람이 직접 자비를 들여 볼링장을 찾았다. 교육 또한 열악해서 옆에서 친절한 누군가가 대강 볼링치는 자세나 방법을 가르쳐주면 엉거주춤 따라 하는 게 전부였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터라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심지어 어디에서 공을 굴려야 할지 몰라 공을 들고 라인 중반까지 걸어가는 웃지 못할 일까지 일어났다. 

하늘동호회 회원이 지지대를 잡고 거리를 가늠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볼링대회에서 시원하게 공을 굴리는 정옥순 회원. 
5년이란 시간동안 하늘동호회를 이끌어 오신 김영래 회장님.

“처음 동호회를 이끌어나갈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볼링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들면 힘들수록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더군요.” 하늘 동호회 김영래 회장은 동호회 초반을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에는 몸도 성치 않은 사람들이 볼링을 하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들도 점점 늘었다. 그러다 전라남도 장애인 체육회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라남도 장애인 동호회로 발돋음 하게 되었다. 이후 전남장애인볼링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우승을 휩쓸며 명성을 높였다. 전국에서 열리는 장애인 볼링대회가 있다면 어디든지 참가할 정도로 회원들의 열정은 비장애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그들의 열정은 더욱 뜨겁다. 

“몸에 장애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지 않으면 마음에도 장애가 생기는 법입니다. 많은 장애인분들이 사회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제는 저희처럼 당당히 밖으로 나오셨으면 합니다. 자신이 직접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지 않으면 영원히 장애에 갇혀 버릴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사회로 나가길 주저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김영래 회장은 본인 스스로의 용기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장애를 넘어 세상 밖으로 

하늘동호회 회원인 이돈후 씨는 고질병인 당뇨병이 합병증을 일으켜 몇 년 전 시력을 잃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한없이 절망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건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붙은 사회와의 고립감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하늘 동호회를 알게 되어 볼링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삶의 보람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볼링을 치면서 장애인 또한 주체적으로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남다른 열정이 엿보였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꼭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매주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안마 봉사활동을 하러 다닌다. 

삼십대 중반인 지희정 씨는 하늘동호회에 최연소 회원이다. 그녀는 차 사고를 당해 저시력 장애 판정을 받았다. 사고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어 몸을 가누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오늘도 그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시원하게 볼링핀을 넘어트린다. “사고를 당한 뒤 언제 나 집에 있었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 사람들을 만나니 너무 즐거워요.” 유난히 밝은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연습에 하루라도 안 나오면 무슨 일 있냐며 전화할 정도로 회원들 사이는 가깝다고 말한다. 

장애는 어느 순간 불연 듯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 사고나 합병증으로 갑작스럽게 시각을 잃게 된 경우 몸의 불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인 문제까지 생겨날 수 있다. 또한 활동반경 역시 제한되면서 체력이 약해지고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호회 회원들은 볼링이야말로 굳어진 몸을 움직이고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늘동호회는 단순히 볼링을 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하며 자신의 장애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볼링장 위에서 남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스포츠맨으로 우뚝 선다. 그들에게 있어 쭉 뻗은 볼링장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허물어진 자유로운 공간인 셈이다. 

오늘도 열심히 연습 중인 윤종심 회원. 
전남장애체전 정점임, 김순자 회원. 나 란히 1,2등 자리를 석권했다. 
최고령자 강순례 회원. 나이는 들었지만 실력만큼 은 남에게 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넘치는 의지, 열정, 용기.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현실

이처럼 남다른 열정과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하늘동호회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늘동호회는 전남 장애인체육회에서 지원을 받아 현재 일주일에 두 번 순천 애플볼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이마저도 11월이 되면 끝이 난다. 이후의 연습은 모두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거기다가 볼링 장비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장비는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회원들이 자비로 준비한다. 또한 대회에 참가하는 경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큰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도 여유가 없어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김영래 회장은 현재 모든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볼링 물품은 대부분 고가인데다 회원들은 높은 연령대에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 하늘동호회에는 지원이 절실한 상태에요. 쓰지 않는 볼링공이나 가방 같은 물품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하늘동호회에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지원 뿐만이 아니다. 교육부분의 지원도 필요하다. 일단 회원들이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볼링을 가르치는 것에 시간과 노력이 배가 든다. 하지만 총 21명이나 되는 회원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통솔하는 코치는 단 한명 뿐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자원봉사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늘동호회 박영진 코치는 이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총 21명이나 되는 하늘동호회 회원들을 저 혼자 가르치고 있으니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들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저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니 늘 죄송한 마음만 듭 니다. 한 명이라도 더 전문적인 볼링 코치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늘동호회 회원들은 연습을 쉬지 않는다. 매주 애플볼링장에는 노란 유니폼을 입은 그들이 핀을 넘어트리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과연 이 소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향후 동호회의 운영에 대해 말하는 박영진 코치와 김영래 회장의 얼굴에 시름의 빛이 떠나질 않는다. 지금 하늘동호회에는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실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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