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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게 굽어진 허리 포근한 담요 같은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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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도예가 한갑수”

그는 돈을 ‘소소한 행복의 도우미’정도로 부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 스스로를 그저 예술가인척 먹고 살뿐이며, 이런 행위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되뇐다. 다만 더듬이와 촉수를 열어두고 늘 자신의 것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날마다, 주억거린다.

어영부영 속에 행복이 우글거린다.

‘어영부영 사는게 좋다면서요?

전 어영부영의 힘을 믿어요. 저도 작품에 대해선 욕심이 많아요. 서울에 갈 때면 그곳에서 활동하시는 큐레이터 분들이나 단장님을 만나 술잔을 기울일 때가 있거든요. 제가 나이가 그분들보다 한참 어려서 허물없이 대하세요. 그분들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세요. “갑수 너나 전라도 사람들은 맨날 어영부영해~” 그런데 전 전라도 사람들의 그 어영부영 속에 멋이 숨어 있다고 봐요. 손님이 찾아오면 열일 제쳐두고 낮술도 나눠 마실 줄아는 그런 멋. 그렇게 어영부영 사는 게 ‘사는 맛’ 아닐까요?

‘갑도예’라는 네이버 블로그 안에 직접 쓰신 좋은 문구들이 많더군요. ‘어영부영 속에 행복이 영근다.’라는 문장이 흥미롭게 와 닿았어요.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갑수 씨는 행복한가요?

요즘 저요? 너무 행복해요. 도자기를 처음 배우던 스물네 살 때만 해도 선생님 밑에 있으면서 흙을 만질 수가 없었어요. 아침 점심 저녁 밥상 차리는 일만 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죠. 젊은 놈 손이 퉁퉁 부어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대로 흙을 만질 수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또 1년 전 아무 것도 없이 무안으로 내려온 저란 사람을 살려보겠다고 목공예하는 형님들이 십시일반 도와서 제가 살 공간을 만들어 줬어요. 그 일에 대한 행복감. 이 공간 안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느끼는 행복감. 딸아이를 재우고나서 완성된 도자기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은근한 행복감. 거기다 무안이 텃세가 심한데 내가 인물이 되다 보니(웃음) 이웃집 할머니들이 전부 절 걱정해요. 89세, 93세 드신 양반들이 말이죠. 윗집 할매가 닭이 이제 막 계란을 낳았다고 악을 쓰면서 얼른 오라고 할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라니. 이곳에선 행복이 천지여라~

시골에선 하루가 여유롭지 않나요? 물론 농사짓는 어르신들은 바쁘시겠지만.

전 도자기 안했으면 한량처럼 놀고 먹었을 거예요. 12시가 되고 1시가 되도 안 일어나고 싶어요. 그런데 시골 할매들은 안 일어나면 집으로 쫓아와요. 농약병에 쓰인 글씨를 못 읽겠다, 손수레 바퀴에 바람이 빠졌으니 바람 좀 넣어 달라. 시골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활동하잖아요. 거기 맞춰야지 어떻게 해요. 오늘은 90살 드신 윗집 할매네 토끼를 잡아줬어요. 토끼가 도망갔다고 해서 친구랑 1시간 동안이나 집 주변을 뛰어다니며 토끼를 잡았어요. 근데 또 한 시간 있다가 토끼가 도망간 거예요. 오전엔 그렇게 토끼 두 번 잡아주고 떡국 한 그릇을 얻어먹었어요. 그런 일들에서도 나름대로 행복을 느껴요. 도시에서 주말마다 친구들이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이런 얘길 들려주면 절더러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렇게 산대요. 근데 그런 걸 철이 안 들었다고 하면 난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들어도 행복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이건희도 죽고 김정일도 죽고 나도 죽는데 살면서 굳이 철이 들 필요 있나?’

인터뷰를 하면서 순화를 해서 그렇지 전라도 사투리 엄청 쓰시는데요?

전라도 사람이니까 사투리를 많이 쓰죠. 전라도 사투리는 전라도에선 표준말이잖아요.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면 전 거기서도 일부러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써요. 지방대 나왔다고 웅크리는 후배들이 많아요. 예술가라는 놈들이 말이죠. 그럼 지방대 나온 지 심장은 노랗고 서울대 나오고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은 삘가고(빨갛고)? 내 심장도 펄떡펄떡 뛰고 그들심장도 펄떡펄떡 뛰는데 왜 자기 감성이 학벌 때문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냐 이거에요.

독기로 태어난 고슴도치, 이제는 행복 전하는 못난이?

도자기로 만들어진 고슴도치가 무척 흥미로워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죠?

96년도에 선생님 작업장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했어요. 제목이 ‘염치불구전’이었죠. 물론 배우는 단계였기 때문에 미숙했죠. 아내의 시나리오 학원 등록비를 준비하기 위해 계획한 전시회였어요. 그 전시회를 끝내고 새로운 걸 만들어보자 생각했어요. 정말 내 것을 찾고자 죽을 만치, 숨이 넘어갈 만치 고민했어요. 그러다 고슴도치를 생각해냈어요. 고슴도치는 그 자체로 독기와 무식함을 상징해요. 똑똑한 사람들이 흙으로 고슴도치를 만들겠어요? 사실 저도 처음엔 엄두가 안 났어요. 머릿속 계산이 맞질 않더라고요. 도자기는 불에서 견뎌야 하는데 고슴도치 가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거예요. 얼굴 표정과 몸의 형태, 가시도 달라지고. 몇 년간 고민하다가 드디어 고슴도치 한 마리가 세상에 태어났을 땐 너무 기뻐서 산 밑에 가서 마구 소릴 질렀어요. 아시는 분한테 보여드리니까 반응이 예상외로 좋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니까 더 욕심을 내서 계속 만들게 됐죠.

고슴도치 안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제 고슴도치는 지역적인 정체성이나 미학적 명제는 없어요. 여성상담센터에서 근무하시는 지인 분이 계신데 그분 사무실에 고슴도치 가족이 놓여 있어요. 고슴도치는 ‘가족’의 의미가 강하잖아요. 우울해하시는 분들이 와서 보고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읊조리며 가신대요. 남도의 미학적 명제가 없으면 어때요?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보고 힘을 얻으면 되는 거죠. 누군가 우리 가족이 저 고슴도치들처럼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야겠다, 마음먹으면 되는 거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가 집합을 이뤄 어머니 품처럼 포근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사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하지만 일부러 스스로를 고슴도치라고 정의 내릴 마음은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어요.내가 고슴도치와 닮았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 속에 씨앗처럼 남아 있어요. 하지만 그 생각에 치우치고 싶진 않아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요. 3분의 2만 질서를 지켜라. 그리고 3분의 1은 자유롭게 놓아두면 언젠가 제 3의 것이 탄생할 수 있다. 앞으로 고슴도치 전시회를 다시 가질 생각이에요. 스토리와 서사가 있는 고슴도치전을 준비하려고 해요. 내년 쯤 다시 고슴도치를 가지고 서울과 목포에서 동시에 전시회를 하려고해요. 올해는 단체전에만 참여할 생각이고요.

밥그릇 이야기

어린 시절이 궁금해요. 고향 섬을 떠나오면서 내가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들었어요.

신안군 신의면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나신 하의면 옆 섬이 제 고향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까지 섬에서 학교를 다닌 후 중고등학교는 목포에서 나왔어요. 염전을 하시던 부모님이 목포로 옮겨오시기 전까지 주말마다 섬을 오갔죠. 어릴 적 난 내가 섬에서 태어난게 정말 행복했어요. 섬에서 자란 기억들은 그동안 작업을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됐죠. 천천히 가는 배 안에서 무인도 같은 섬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하던 시절인데, 그런 시절에 내가 뭘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죠.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으면서 그런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 고3때는 수능 공부는 안하고 책만 엄청 읽어댔죠. 그래서 한 때는 시인을 꿈꾸기도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스님이 되고 싶어 2년 동안 절에 가 있기도 했어요. 그렇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도자기 선생님을 만났죠.

처음으로 도자기를 배우던 시절엔 스승님 밑에서 밥 짓고 빨래하느라 손이 퉁퉁 부었다면서요?

전 제가 손재주가 있는 게 아니라 선생님과의 인연 속에 뭔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도자기 세계의 부모님이죠. 처음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어요. 스물 네살에 도자기를 처음으로 배우면서 밥도 하고 속옷도 빨았어요. 선생님께선 항상 저더러 밤 11-12시에도 손님들이 찾아오면 밥상을 차려내게 하셨어요. 힘들어도 도자기 만드는 걸 배우고 싶으니까 꾹 참았죠. 선생님은 손님들이 많이 와도 “너 나가 있어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의자를 놔두고 멀찍이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게 하셨죠. 찻물이 떨어지면 찻물을 따라주고, 손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들어보라고요. ‘갑수야, 이리 와서 (도자기 빚는 일) 한 번 해봐라’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그런데 오히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런 소리를 안 하신 게 정말 감사해요. 도예는 몸이 배우는 거라 한 번 배우면 바꾸기가 힘들거든요.

스승님 덕분에 ‘사람’에 대해 깨달은 게 있다면요?

함평에서 실패를 맛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 곁을 떠나갔어요. 그때 그걸 느꼈죠. ‘내가 이렇게 아무 것도 없고 힘이 없으니까 모두들 떠나가는구나.’ 그런데 작업장이 다시 생기니까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더군요. 내가 그 사람들을 향해 ‘너는 내가 아무 것도 없을 때는 떠나가잖아!’ 라고 인상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나보다는, 그 사람들이 날 떠나가서 심기가 더 두터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까이서 농사짓는 친구가 있는데 사람을 대하는 거보면 눈물이 나요. ‘두바이’란 친군데 그 친구는 온몸으로 살거든요. 전날에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일어나서 소밥을 주러가요. ‘저 사람은 나처럼 스승님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저렇게 열심히 살고자 하는 부지런함과 성실함, 사람에게 고개 숙일 줄 아는 자연스러움은 어디서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돈은 행복의 도우미 정도면 충분하다” 라고 블로그에 써놓은 걸 봤어요. 돈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나요? 어찌 보면 예술가들한텐 예민한 질문이기도 한데.

얼마 전에 중국 도자기학교에서 전화인터뷰가 걸려왔어요. 도자기를 하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거예요. 먼저 나쁜 점에 대해 얘기했죠. “부모가 다리가 아파 못 일어나는데 자식이 걱정할까봐 아프지 않은 척 일어난다. 자식은 그걸 눈치 채지만 돈이 없어 선뜻 병원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마다 돈의 절실함을 정말 많이 느껴요. 어찌됐건 생활자기도 도자기 만드는 거잖아요. 도자기를 구우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으니까 그 또한 감사하죠. 무안에 내려오기 전에는 주로 작품 위주로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와선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폐를 끼치다보니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생활자기를 만들게 됐죠. 밥그릇, 차도구, 컵 이런 거. 천천히 밥그릇을 만들면서 이 놈들하고 얘기를 나눠요. 그래서 누군가가 밥그릇을 가지고 가면 어디로 간 것까지 다 기억이 나요.

오늘은 필 꽃이지만 내일은 핀 꽃으로 다가올 수 있나니

소설이나 시집을 좋아하시나 봐요. 인생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 있다면요?

‘좁쌀 한 알(최성현)’이라는 책이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사람이 미워지면 얼른 그 책을 읽어봐요. 전 사람 인(人) 자가 2획이라고 생각하는데, 2획을 쓰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 책은 한마디로 주문 같은 책이에요. 인간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제게 기준이 되어주죠. 사람이 미워지면 그 책을 보면서 다시 사람을 봐요. 마치 성경 같은 책이에요.

‘오늘은 필 꽃이나 내일은 핀 꽃으로 다가올 수 있나니’란 갑수님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요. 그렇다면 본인은 지금 어떤 꽃이죠?

‘오늘은 필 꽃이나 내일은 핀 꽃으로 다가올 것이니’란 문장은 일기 글을 모아 99년도에 시집 같은 걸 내놓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쓰인 문장이에요. 이젠 ‘핀 꽃’이고 싶어요. 예전에는 ‘필 꽃’이 간직한 기다림과 동경, 희망이 좋았어요. 하지만 요즘 들어선 삶이란 오늘 피어난 꽃 속에 앞으로 피어날 꽃을 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핀 꽃과 필 꽃이 계속 반복되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그게 인생이지 않나 싶어요. 지금은 치열함보다는 얼렁뚱땅 안에 담긴 진지함이 더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냥 저냥 해도 바보는 아니예요. 또 바보면 어때요?

오늘 핀 꽃 한갑수 씨는 앞으로 꿈이 뭔가요?

이제 아내랑 딸이랑 알콩달콩 살고 싶어요. 예전엔 야망도 많았어요. “난 시시한 건 안 해. 뭔가를 보여 주겠어” 그런 생각들이 많았죠. 마음에 독기가 가득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독기는 제쳐두고, 그냥 아내랑 딸이랑 지금 이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로 작은 수입이라도 내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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