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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기차를 만나러 가는 길 “섬진강 기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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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빠르고 기술이 발전했다지만 우리는 더 빠르고 촘촘히, 짧은 시간안에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 고속열차라는 KTX도 우리의 조바심을 해소하지 못한다. 차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타블렛pc를 켜고 음악을 들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먹을 것을 주워 입에 넣느라 분주하다. 어두운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액정이 창 밖 풍경을 대신한다. 기차는 언젠가부터 사람을 실어 나르는 고철이 되어버렸다.


이별의 목격자

지난 날, 기차는 사랑하는 연인의 손목을 낚아채가는 악역을 도맡았다. 주저앉아 우는 이를달래지 못하고 머쓱해하는 공범자 역할은 기차역이 맡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아름다운시절>, <경성스캔들>, <스카우트>, <모던보이>와 드라마 <토지>, <야인시대>, <서울1945>, <사랑과 야망> 등 많은 작품이 곡성역에서 촬영되었다. 기약 없는 이별, 피난열차, 징집을 떠나는 주요장면의 배경이 된 곡성역은 1933년에 지어진 역사와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운행되어졌던 증기기관차 덕분에 자연스러운 미장센을 연출해주었다.

맞배지붕을 멋스럽게 드러낸 역사(驛舍)와 투박한 의자가 놓인 대합실, 오래된 자명종 시계 곁으로 작은 유리창이 뚫린 매표구와 녹색 칠판에 백묵으로 적힌 시간표 모두 1933년에 멈추어져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차표 대신 알록달록한 입장권이 쥐어진다는 것뿐이다. 작은 대합실 문을 열고나서면 승강장을 사이에 두고 열차를 타는 곳과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으로 나뉜다. 매일 다섯 차례만 운행되는 증기기관차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장미정원을 둘러보거나, 분수대와 정자를 휘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낡은 의자에 앉아 철로에 삐죽이 얼굴을 내민 야생초를 들여다보며 기차를 기다린다. 참으로 오랜만의 정적이다. 이제 더 이상 눈물을 쏟는 이별과 기다림의 대상은 없지만, 사람들은 오직 ‘기차’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에 답하듯 뚜-우 낮은 기적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자 그 울음만큼이나 느릿하게 기차가 다가온다. 빠르게 더 빠르게 달려 시간을 지나치는 현실에서 시속 30㎞의 기차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열차가 목을 축인다.

곡성 읍내를 벗어나 강변에 접어든 기차는 섬진강물길을 거슬러 간다. 며칠간 달디 단 비가 내렸지만, 강은 여전히 기운 빠진 모습이다. 덩달아 기차 안에
도 더위가 스며드는 기분이다. ‘비가 더 내려줘야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이러한 객지 사람들의 오지랖에 답하기라도 하듯 이미 오래전에 이런 시를 써두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 개울물들이 끊기지도 않고
모여 흐르며
(중략)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
를 불러 /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 안고 /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
냐고 물어보면 노을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 고갯짓을 바라보며 / 저무는 섬진강을 따
라가가며 보라 /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끊임없이 약동하는 힘, 섬진강은 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후퇴하였다는 전설에서 ‘두꺼비 섬(蟾)’ 자를 써서 섬진강(蟾津江)이라 불리게되었다. 우리나라 4대강의 하나로 멀리 임실, 순창을 발원지로 하여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에서 옥과천과 합류하고 곡성읍 동산리에서 남원까지 내려오는 요천수와 합류하게 되고 오곡면 압록리에서 보성강과 또다시 합류하여 구례와 하동을 거쳐 남해로 흐르게 된다. 섬진강이 여기 곡성군을 경유하는 거리는 36km 정도. 곡성에서는 순자강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훈련 장소였던 청계동 계곡을 비롯한 호국과 관련된 유적이 많아 역사적으로도 위치상으로도 유서 깊은 강이다. 또한 동학농민 혁명, 항일의병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870년 후반 이후 약 2년 동안 의병투쟁은 가장 격렬하여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의병투쟁의 후기에는 전라도 의병활동이 가장 왕성하였는데 섬진강 유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섬진강 유역을 배경으로 수만명이 피 흘리며 싸웠다. 느닷없이 군에 차출되어 버린 두 형제의 이야기,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곳에서 촬영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 그래왔듯이 섬진강은 가뭄을 이겨낼 것이다. 걱정일랑 접어두자. 지금은 기차가 목을 축이는 시간이다.


첨곡에 사는 도깨비

문득, 멈춘 기차의 차창 밖으로 난데없이 동상 하나가 보인다. 사천왕 중의 하나인가 싶었더니, 첨곡에 사는 도깨비란다. 섬진강에 있는 도깨비살에 그 연원이 있다. 도깨비살이란 “도깨비가 만든 살뿌리”란 뜻이다. 살뿌리란 다른 말로 독살이다. 강이나 바다 어귀에 고기를 잡기위해 돌로 둑을 만들어 쌓은 것이다.바다에서는 밀물과 썰물의 차이로 물이 빠지면 독살에 걸린 고기를 잡고, 민물에서는 물살이 센 곳에 설치하여 고기가 걸려 잡을 수 있도록 만든 어로 방법이다. 곡성 섬진강의 도깨비살은 전국에서 강에 설치한 독살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 곡성 도깨비살에 관한 문헌은 동국여지승람에서 볼 수 있는데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충정공 마천목장군이 어릴 적에 고성군 오지면 당사마을로 이사 왔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마천목장군은 생활이 넉넉지 못해 섬진강에서 몸소 낚시를 하여 부모를 공양하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물고기가 안 잡히자 강을 막아 고기를 잡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이 너무 넓고 흐름이 급해 사람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며 강 쪽을 거닐다 둥글게 생긴 돌이 푸르고 기이하여 주워왔다. 그날 밤, 수천의 도깨비 무리들이 마천목을 찾아왔다. “우리는 강가에서 사는 범산의 도깨비들입니다. 대감께서 석양녘에 주어오신 둥글게 생긴 돌이 바로 우리들의 대장이오니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소년 마천목이 말하기를 “내가 섬진강 두계천에 어살을 만들려하는데 너희들이 막아주면 너희 장수를 돌려주겠다.” 하였다. 그리하여 넓고, 흐름이 급한 강가에 도깨비살이 생겨났다 한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와 첨곡의 도깨비마을이 되었다.


종착역

도깨비 동상을 지나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넉넉한 섬진강에 빠지다 보면 어느덧 종착역인 가정역에 닿게 된다. 버스보다 느린 기차를 타고 30여 분을 달린 뒤다. 하차하면 붉은색 두가현수교를 건너 조용히 시간을 기록하는 섬진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흔들리는 기차에서 놓친 사진도 이곳에서 마음껏 찍을 수 있다. 다리 아래에 매점을 기웃거리다가 유별나게 향긋한 라면냄새에 결국 사발면 하나에 물을 붓고 만다. 후루룩 한입 먹고 나니, 이번 여행의 종착역이 매점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30분 뒤에 옛 곡성역으로 돌아가는 기차가 출발하지만, 오늘은 조급할 것이 없는 날이다. 빚쟁이처럼 쫓기듯 사는 것은 그만두고,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가는 세상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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