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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옷깃에 스민 차(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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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옷깃에 스민 차(茶)의 향기 

초의(草衣)는 말 그대로 ‘풀을 엮어 만든 의복’을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누리는 무위자연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승려로 ‘차(茶)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을 통해 우리 차의 탁월함을 노래했다. 동다송은 그의 나이 52세 되던 해에 쓰인 31송의 칠언시다. 중국차에 뒤지지 않는 우리 차의 우수성,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색, 좋은 차를 만드는 제다법 등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01

우리 차에 대한 자부심

우리나라에서 나는 차도 역시 근원이 같아 

색과 향, 기운과 맛이 (중국과) 한가지라네 

육안차의 좋은 맛 몽산차의 효능을 지녀 

옛사람들은 우리차가 둘 다 겸비했다고 높이 칭송하였네 

– 동다송 中에서 – 

전설상에서 우리나라 차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의 공주 허황옥이 가야국의 김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가져온 것은 금은보화와 차나무 씨였다. 또한 우리나라 차 재배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신라27 대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유학했던 한 스님이 차 씨를 들여와 하동 쌍계사 근처에 심었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에도 호국불교의 영향으로 귀족들이 차를 즐겨 마셨고, 이는 고려청자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초의선사가 살았던 조선시대의 차문화는 숭불억제 정책으로 위기를 맞는다. 유교를 숭상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불교와 차는 대중화를 이루지 못한 채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18~19세기 조선중기로 접어들면서 차문화는 역설적인 면을 드러낸다. 비록 대중에게 다가설 기회는 잃었지만, 승려와 선비라는 특정 계층에서는 정신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시ㆍ서ㆍ화 등 다방면에서 예술적 재능을 갖춘 초의선사라는 인물이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오늘날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1786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광산리에서 태어났다. 15살 되던 해에 운흥사로 출가했고, 이십대 무렵에 다산 정약용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지리산 칠불사와 대흥사에 머물면서 한국 다도의 길잡이가 된 ‘동다송’ 과 ‘다신전’을 펴낸다. 그 중 동다송은 우리 차의 장점과 차를 대하는 올바른 정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 차 역시 중국차에 뒤지지 않는다’라는 초의선사의 소신있는 목소리가 담겨있어 더 의미 깊다. 

02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색, 벗과의 교류 

대나무 숲, 소나무에 부는 바람, 파도 물결소리 

찻물 끓는 소리 산뜻하고 시원하고 고요하니 

맑고도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속 깊숙이 일깨우네. 

혼자 마시기에는 신이하고 

둘이 마시는 것은 아주 좋고… 

– 동다송 中에서 – 

차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다는 사색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초의선사는 승려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선(禪)을 차와 동일시했다. 차를 마시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선을 추구하는 육체적인 활동인 동시에 정신적인 수행으로 여겼다. 참선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찾게 하는 차 역시 선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찻잎을 딸 때와 차를 만들 때 온 정성을 다하고, 차를 우려내는 물은 맛과 향이 없는 그대로의 본성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래야만 차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몸과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또한 차는 군자와 같아서 그 성품에 악함이 없다고 여겼다. 즉, 차를 길러낸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일을 통해 삶의 진리를 추구했다. 

초의선사는 평소 직접 찻잎을 따고 이를 가마솥에 덖어 그의 벗이었던 추사 김정희와 그의 스승이었던 다산 정약용에게 철마다 차를 만들어 보내주었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선사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고 전한다. 때때로 추사는 초의선사에게 서신을 보내 차를 보내달라는 생떼를 쓰기도 했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새 차는 어찌하여 돌샘과 솔바람 사이에서 혼자만 마시며 도대체 멀리 있는 사람 생각은 왜 아니 하는 지. 봉 30대를 단단히 맞아야 하겠구려.”라는 농담 섞인 구절이 들어 있다. 

03

차를 향한 못 말리는 사랑

차는 아홉 가지의 어려움과 네 가지의 향을 

현묘하게 다뤄야 하니, 

어떻게 하면 그대들에게 가르칠까. 

장유화상(허황옥의 오빠)이 수도하던 

옥보대에서 좌선하는 무리들이 

차를 깨달을 소냐… 

– 동다송 中에서 – 

초의선사가 펴낸 동다송은 이후 승려나 선비들이 차를 이해 하고 차문화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 좌선하는 승려들조차 찻잎을 어느 시기에 따서 어떻게 말려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수확한 찻잎 으로 우려낸 찻물이 청록색이 아닌 붉은색을 띄고 맛이 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초의선사는 차를 만드는 아홉 가지 어려움에 대해 열거하면서 좋은 차를 얻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찻잎은 곡우 전 5일간의 것이 최상품으로 치며, 싹은 붉은 것이 좋다. 차를 덖을 때는 솥 안에 불김이 고루 퍼져야 차의 빛깔과 향이 아름다워진다. 또 차의 품질은 차를 만들 때의 정성과 저장하는 법, 끓는 물에 차를 우려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불이 강하면 차의 향이 맑고, 땔감이 적으면 푸른빛을 잃는다. 한편 물은 흘러서 움직이는 물이 고인 물보다 낫고, 응달진 곳에서 나는 물이 양지의 물보다 좋다. 

초의선사는 81세란 나이로 입적하기 전까지 차에 관한 뛰어난 감각과 해박한 지식으로 당대 선비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그는 승려라는 신분에 매이지 않았고, 스스로가 간직한 다양한 재능을 바탕으로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걸출한 인물들과 왕래했다. 그들 사이에는 학문과 사상, 예술과 함께 ‘차’라는 공통적인 화두가 언제나 존재했다. 차를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의 세계에 비길 만큼 신성시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에서 맛보는 한 끼의 식사처럼 가깝게 대했던 초의선사. 자연이 내어준 ‘차’를 통해 삶의 가치를 추구한 그의 특별한 차 사랑이 차를 향한 무감각한 시선에 호기심을 선물한다. 

▲ ‘다성사(초의선사사당)’로 오르는 길에 세워진 초의선사 동상. 

‘차문화의 선구자를 키워낸 곳’ 

  • 초의선사유적지

전남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 943번지에 위치. 초의생가와 기념전시관, 조선차역사박물관 등이 마련되어 있다. 조선차역사박물관에서는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제다법 등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정약용이 초의선사에게 보낸 걸명소(차를 구걸하는 편지)등 차를 둘러싼 재미난 사연과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초의선사 유적지는 1998년 생가 발굴을 시작으로 99년에는 ‘다성사(사당)’가 세워졌고, 이후 초의선사를 기념할 수 있는 전시관과 차박물관이 차례로 세워졌다. 현재는 유적지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차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차문화체험관이 건립되고 있다. 한편, 차교육관인 ‘초의선원’에서는 연중 다도체험이 가능하다.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따른 맞춤형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예절로부터 차를 대하는 태도, 차를 맛있게 우려내는 법, 차를 만드는 제다 실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초의선사 유적지를 지키는 즐거운 이야기꾼’ 

  • 박종길 교수

시인이자 사진작가이며 현재 세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사진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종길 교수. 그는 강의 가 없는 날이면 대부분 초의선사 유적지에 머문다. 차와 초의선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다도를 체험하 려는 이들에게 역사에 얽힌 차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초의선사유적지에서 문화 해설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는 평소 초의선사유적지 입구에 위치한 조금한 다실에 머물며 오가는 이 들을 맞는다. “초의선사 유적지를 지금의 모습으로 일군 사람은 이곳에 머물고 계신 용운 스님이에요. 그분 은 초의선사에 대한 연구를 1998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계십니다. 전 바쁘신 스님을 대신해 이곳을 살 피고 있어요.” 인생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에게선 어딘지 젊은이의 다부진 근성도 엿보였다. “우연히 길가 의 안내문을 보고 이곳을 방문한다든가 인터넷을 뒤져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제가 초의선사 유 적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곳곳에 깃든 사연을 자세히 말해주면 다들 매우 흥미로워합니다. 그때마다 제 역할에 기쁨을 느껴요. 또 방문객들이 돌아가서 덕분에 초의선사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는 이메일을 보내오면 큰 보람을 느끼지요.” 그가 슬며시 내민 찻잔에는 사람을 따뜻하게 맞는 정감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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