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종기 모여 앉은 집들 사이로 고개만 내민 길들은 마치 숨바꼭질 하는 아이들 같았다. 거쳐 갔을 시대의 흔적이, 이 산 언저리에 머물렀을 사람들의 자취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숱하게 이곳을 지나쳐갔을까. 의문이 절로 고개를 든다. 수많은 발걸음과 그 만큼의 이야기가 머물렀을 작은 길들을 유달산은 끌어안아 품고 있었다. 긴긴 세월동안 목포를 바라보며 그 자리를 지켰을 유달산. 그 굳건함이 놀랍다. 여름에서 가을로 향해 걷는 어느 날. 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그 넓은 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흘러간 시간을 쫓아 길을 묻다.
한적한 골목을 걷던 도중 주변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주위에 세워진 다른 건물들과 쉽게 섞이지 못한 특유의 르네상스 풍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지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고스라이 받아낸 듯 기둥과 외벽에 시간의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다. 이 곳은 바로 목포근대역사관. 첫인상 그대로 목포근대역사 박물관은 주위에 있는 건물들과 다른 시대 축 위에 세워졌다. 박물관 건물은 본래 일제 당시 조선의 토지를 근대적으로 측량한다는 명목으로 토지를 탈취하던 동양척식회사의 지점으로 쓰였다. 광복 후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 땅에서 물러나면서 이곳은 시대가 남긴 유실물로 목포에 남았다. 지금은 새롭게 단장한 후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 시대의 아픔을 증거하고 있다. 박물관 자체가 목포의 근현대 유물인 셈이다.
역사관 안으로 들어가자 1층 복도 저편까지 이어진 사진 액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진들은 대부분 일제에 만들어졌던 공장이나 건물을 담고 있다. 일본이 침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소위 ‘신식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세워진 것들이다. 세기가 바뀌는 동안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어 대강 위치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복도에 진열된 사진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각 사진에 대해 해설하고 있는 문화해설사 모습이 보인다. 휴일을 겸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의 눈빛이 해설을 들을 때마다 빛난다.
목포근대역사관을 뒤로 하고 다시 골목 위에 몸을 실었다. 일제가 남긴 시대의 흔적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남아 있다. 유달동 사거리 맞은편, 시민 공원 사이로 뻗어 있는 길을 오르면 단아한 붉은 벽돌 건물이 얼굴을 내민다. 현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세련되고 정교한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이 건물의나이는 놀랍게도 100여 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근사한 회관쯤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창틀 위에 그려진 붉은 욱일승천기 문양은 이곳이 어떤 곳임을 짐작케 한다. 이곳은 과거 일본 영사관으로 쓰였던 건물로 목포 이사청, 시청, 도서관
을 거쳐 현재 일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 일본영사관 내에 설치된 벽난로가 당시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고 하니 지난 세월동안 일제의 수탈과 위세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구 일본 영사관 바로 뒤편에는 과거 일본이 한국인을 강제 징용하여 만든 방공호가 있다. 방공호의 입구는 열려 있어 원한다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방공호 입구에 다가서자 무서운 적막이 발끝을 적신다. 그 끝은 짐작하기 어려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방공호의 깊이는 무려 82미터. 여러 갈래의 길이 구불구불 얽혀 있어 깊숙이 들어갈수록마치 거대한 무언가에 집어 삼켜지는 음울한 기분이 들었다. 슬픈 역사의 단면 앞에 서니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지그시 어깨를 짓눌렀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누군가 그랬던가. 방공호도, 구 일본영사관도, 목포 근대역사관도 길이길이 목포가 품어 우리 아이들에게 그날의 역사를 말해주었으면 한다. 특히 지금처럼 독도 분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뼈아픈 시대의 흔적을 통한 역사의 되새김질이 아닐는지.
길을 따라 유달산의 품에 안기다
구 일본영사관에서 옆길로 빠져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노적봉 자락에 세워진 노적봉 예술공원이 나온다. 노적봉 예술공원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미술관으로 지역 화가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층은 목포시 홍보관으로 목포시의 역사와 지리와 홍보 자료를 살펴 볼 수 있다. 예술공원 위로 올라가면 드디어 유달산 입산 입구에 이른다. 가깝게는 노적봉 예술공원을 내려다보고, 멀리는 목포항을 바라보는 풍광 좋은 곳이다. 때마침 여객선 한 척이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간다. 하늘은 잿빛이지만 바람은 우유거품처럼 부드럽고 향긋하다. 유달산 등산코스가 새겨진 대형 팻말이 눈에 띈다. 여러 가지 전설을 간직한 노적봉 뒤편으로 일등바위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층층이 앞에 선다. 길을 따라 산에 오르자 숲의 깊은 적막이 귀를 덮는다. 도시의 소음에 길들여진 내게 유달산은 고요로서 다가온다. 어느새 길은 점점 좁고 가팔라졌다. 바위 사이로 굽어진 길은 유달산을 휘감아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턱턱 막히는 숨을 힘겹게 붙들고 일등바위에 도착하자 목포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뻗어 있는 목포대교와 그 밑을 지나며 포말을 일으키는 고깃배들이 시야를 가르고 말발굽처럼 생긴 일주도로가 곡선을 그린다.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목포 도심이 펼쳐진다. 작고 오밀조밀해 마치 모자이크 그림처럼 느껴지는 건물들. 세월에 닦이며 크고 작은 발전을 거듭해온 목포 시내가 전부 한눈에 담긴다. 전설에 따르면,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는 영혼들이 하늘에 오르기 전 심판을 받는 곳이란다. 해발 228m인 일등바위 한쪽에는 오색헝겊으로 엮인 줄이 쳐져 있었다. 영혼들이 지상에서 머무는 마지막 장소인 만큼 누군가에겐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이유일 것이다. 생의 잘잘못을 심판받는다는 상상은 결코 유쾌하
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생각.
이내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고 어떻게 될지. 과묵한 일등바위가 선물해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가볍지 않은 사색에 잠겼다. 일등 바위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산의 옆길로 몸을 틀었다. 지금까지는 길이 가파른 바윗길이었다면 여기부터는 조용한 숲길이 이어진다. 발바닥 아래로 부슬부슬 흙이 밟히고 울창한 나무들이 머리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어도 좋을 편안한 길 덕분에 지친 발이 잠시 쉴 수 있다. 산길은 부드럽게 유달산 전체를 아우른다. 그렇게 가만히 걷다 보니 길 끝에 유달산의 유일한 절, 달성사의 처마가 보였다. 정숙하라는 문 앞의 표지판을 보고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줄였다. 근처에 있는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잠시 절 마루에 앉아 숨을 돌렸다. 조용하고 차분한 절 특유의 분위기가 살갗에 지그시 내려앉는다. 멀리서 절 처마의 풍경 소리가 파문을 이룬다. 눈을 감으니 깊은 여유가 온 몸을 끌어안는다. 바쁘지 않게 천천히 뚜벅 뚜벅 걸어간 여행의 즐거움은 언제나 이런 고
즈넉함에 있다.
달성사에서 숨을 돌린 후 또 다시 산 속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허리를 타고 조금 걷다 보니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蘭) 전시관이 보였다 . 난 전시관에는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대표하는 난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삿갓 쓴 점잖은 양반 도령을 빼닮은 난초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난초. 무심한 듯 작은 돌 위에 아슬아슬 뿌리를 내린 난초 등 난 전시관은 각양각색의 난초들이 서로 한데 어울려 국적과 계절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나 둘 개성 넘치는 난들을 보면서 천천히 그 사이의 길로 빠져 들어갔다. 난 사이에서 걸어나와 이제는 산 아래로 꼬리를 내린 길을 쫓았다. 노적봉에서 길게 곡선을 그리며 일등바위로 뻗어나간 길은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흩어진 길들은 여러 모습으로 조각나 굳어 다채로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곳이 오늘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조각공원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조각공원으로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바위와 쇠를 통해 빚어진 목포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역동적이고 차분하고 때론 해학적이기까지 한 여러 예술조각품들이 자꾸만 발걸음을 붙든다. 목포를, 바다를, 자연과 문화를 담은 모습들이 의미 있고 다채롭다. 조각공원에 세워진 조각들을 하나 둘 감상하다보니 어느새 유달산으로 오르는 길이 다시 다가온다. 산 입구는 다시 시작점인 노적봉을 향해 뻗어 있다. 차분히 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유달산의 모습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굳건한 웅장함이 아직도 마음을 붙든다. 수 만, 수 억년을 살아온 산으로서 100년도 채 살지 못할 인간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호기심을 품고 홀로 걷는 유달산과의 첫 번째 데이트는 그렇게 커다란 원을 그리며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