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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위대하다.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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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안갔다. 영.산.도. 

시작은 흑산도로 향하는 쾌속선부터다. 영산도는 신안 흑산면에 부속된 작은 섬으로 반드시 흑산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간다는 생각에 설렘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여객선에 발을 옮겼다. 

섬으로 꽉꽉 매어진 신안군도를 지나 1시간 만에 먼바다라 불리는 서해바다가 나왔다. 그와 동시에 고요히 나아가던 여객선도 위아래로 흔들렸다. 옆으로는 비닐봉지를 들고 화장실로 향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깊숙이 올라 오는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동료를 흔들어 깨웠다. 흑산도 가는 길이 이렇게 험하냐 물었더니 “원래 이렇게 가는 거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동료는 다시 외투를 얼굴에 덮고 잠이 든다. 원래 이렇게 가는 거라니. 배가 곧 바다 깊숙이 가라앉을 것만 같은데. 흑산도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 이런 항해를 한단 말인가. 서해바다처럼 눈앞이 노래진다. 

1시간을 더 달려 흑산도에 도착했다. 육지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내리자마자 차에 옮겨 타고 뒷대목으로 갔다. 영산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포구라 할 것 없는 뒷대목에서 배를 타 야 한다. 멀리 배 하나가 다가온다. 15분가량 어선을 타고 드디어 영산도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포 출발 4시간 만이었다.


영산화가 피는 섬 영산도

“여기 흑산도에는 마을별로 다 집배원이 있지라. 영산도도 흑산도에 포함된께 매일 흑산도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가지고 나와 집마다 배달해 주지라. 마을이요? 하나뿐이요. 옛날에는 고 개 너머 마을이 하나 더 있었는디 자식들이 모조리 육지에 나가고 늙은 부모들만 살다 죽고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라. 저기 오는 배 타고 한 10분 정도 가면 되라. 오늘은 바람이 좀 분께 20분은 가야되겄고만.” 

뒷대목항에서 만난 영산도 집배원, 구재철(68)씨를 만났다. 영산도 토박이로 흑산도 우체국에 소속되어 날마다 흑산도와 영산도를 오가며 주민들에게 우편을 나르고 있다. 짐이라 할 것 없는 그의 가방을 보니 멀리 타지에서 온 택배 상자와 오늘 신문이 가득하다. 이 우편물이 외로운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영산도는 영산화가 많이 피어 영산도라 불린다. 영산화는 개 나리를 닮은 꽃으로 이른 봄이면 섬을 샛노랗게 물들였다. 그 모습이 마치 신선세계와도 같아 신령 영(靈)을 쓰기도 하였다. 지금은 영산도(永山島)라 고쳐 쓰고 있다. 

영산도에 들어서자 흰 모래사장이 눈에 띈다. 섬이 작은 만큼 해변도 크지는 않다. 육안으로도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여름철이면 관광객들에게 좋은 놀이터를 제공하겠다. 

“영산도 실거주자 45명 정도예요. 60대 이상의 고령자가 대다수이고요. 60대 이하면 젊은 사람 축에 끼더라고요. 분교장, 발전소 직원 4명, 사무장, 국립공원 관리인, 나를 포함하여 8명 뿐입니다. 학교는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아들이랑 젊은 선생님 한 명뿐이었는데 사무장 딸이 1학년 올라가면서 2명으로 배로 늘었지요.” 

영산도의 이장 최성광(47) 씨와 사무장 구정용 씨를 만났다. 섬에 있는 사람치고는 꽤 젊다. 그들로부터 영산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명품마을의 시작

영산도는 국립공원이자 명품마을 섬이다. 국립공원은 2년 전, 명품마을은 작년에 지정되었다. 영산도 명품마을 사연은 이러하다. 

“우리끼리 계산을 해보니 10년이 있으면 영산도에 많아야 네 가구가 남겠더라고요. 전부가 늙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밖에 안 계시니. 1년에 서너 가구가 줄고, 아니면 양로원으로 들어가 버리고 하니깐요. 3~4가구 남으면 발전소는 더 이상 돌릴 수가 없죠. 그러면 곧 섬은 무인도가 돼요. 우리끼리 어떻게 고향을 활성화 시킬까 고민하다 명품마을 신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랑 우리 사무국장이랑 서울로 올라갔어요. 다른 마을들은 행정 과장님에다 마을 응원단까지 올라갔는데 우리는 뭣도 모르고 둘이 갔으니. 엄청 주눅이 들었지요. 각각의 책임자들이 나와서 어떻게 마을을 발전시키겠다 멋지게 발표도 하고요. 다섯 개의 마을 중 한 팀은 떨어지고 네 개 마을만 뽑는데 거기서 떨어지겠거니 싶어 마지막까지 나름 사무장과 둘이서 발표하고 그날 바로 내려왔죠. 다음 날 계장님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우리가 1등으로 뽑혀 10억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깐 우리 고향은 명품마을이 되지 않으면 무인도가 되어 버린다고. 그래서 꼭 명품 마을사업에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심사위원들의 표심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이장 최 씨는 차분히 설명한다. 영산도는 여타 다른 관광지처럼 인위적으로 꾸민 곳이 아니다. 영산도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자연 그대로 관광객들에게 제공한다. 그 결과 명품마을 재방문은 올해 70%에 육박했다. 여행객이 막무가내로 연장해 예약이 밀린 적이 한둘이 아니라며 최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여행객이 많아지면 그만큼 늘어나는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었다. 항구에 쓰레기를 모아두면 화물선이 이를 거둬간다. 올해는 추가 지원금을 받아 소각장을 지을 예정이다. 매연없는 친환경 소각시설로 소각 시에 발생하는 열로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목욕탕을 지워 드릴 계획이다. 올해 말에 완공 예정으로 주민들 모두 기대하고 있다며 최 씨는 기뻐한다. 


나주 영산포와 영산도

홍어로 유명한 나주 영산포의 유래가 영산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주의 영산포의 명칭은 여기, 영산도에 비롯되었다. 

영산도는 흑산군도에서 가장 먼저 홍어잡이를 시작한 곳이다. 홍어를 잡으며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영산도에 마을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는 공도정책(빈번한 왜국과 해적들 의 침입에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이 시행되면서 영산도를 포함한 흑산도 주민들이 육지로 강제이주 되었다. 영산도 사람들은 나주로 이주하면서 터를 잡고 살던 곳이 바로 나주 영산포가 되었다. 1970년까지 영산도와 나주 영산포의 끈이 이어져서 여유가 있는 집안 자제들은 나주 영산포로 넘어가 학업을 잇기도 했다. 

영산포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먹지 않는다. 날로 썬 회로 먹는다. 갓 잡아온 신선한 홍어를 영산도 사람들은 굳이 삭혀 먹지 않아도 맛이 좋기때문이다. 오히려 삭힌 홍어는 육지 사람들의 맛이다. 잔칫상에서 비싼 홍어를 골라 먹는 것이 눈치 보여 이것 저것 집어먹다 찾아낸 것이 신김치, 돼지고기와 싸먹는 홍어 삼합이라며 최씨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인다. 


영산도 간첩사건 ‘상국이 아버지’

46년 전 영산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최 씨의 노 모는 당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전기가 없어서 캄캄했는데 밥 먹고 나서 저녁에 동네가 갑자기 대낮같이 환하고 환해. 뭔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와 봤더니 위에 헬기가 조명탄을 쏘고 있는거여. 그때는 이라고 죽는구나 아그들이랑 부엌으로 들어가 문바퀴 잡고 덜덜덜 떨었제.” 

많은 간첩선이 흑산도와 영산도 앞바다까지 내려오는 일이 빈번했다. 그때 당시 영산도 인근에 간첩선 하나가 발각되었다. 헬기가 하늘에서 조명탄으로 위치를 알려주고 군함이 그 뒤를 따라가 간첩선을 침몰시켰다. 침몰하기 전 간첩 두 명이 바다로 뛰어들어 영산도 해안굴로 피신했다. 노를 젓고 지나가던 상국이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상국이 아버지’란 제목으로 국민학교 5학년 도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노모는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며 가쁜 숨을 내쉰다. 밭으로 떨어진 낙하산 천으로 동네 아짐이랑 치마를 해 입기도 했다며 추억에 잠긴다. 그 당시 사용하던 헬기장이 아직도 영산도 산 정상에 남아 있다. 


해상관광투어로 영산도 둘러보기

영산도를 감싸고 있는 주변 해안가는 바람과 파도가 수천 년 동안 만든 기암괴석으로 절경이다. 사람들은 영산도 해안의 아 름다움을 ‘영산팔경’이라 부를 정도로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영 산도에 방문했다면 꼭 한번 해상관광투어에 참여해 보자. 놀라 움과 함께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돌아온다. 출발하기에 앞서 카메라와 휴대폰 배터리를 꼭 확인하자. 순간을 담지 못하여 땅을 치는 불상사가 없도록. 


비성석굴 

코 비(鼻), 소리 성(聲). 이름 그대로 콧소리가 난다 하여 이름 붙여진 동굴이다. 사람이 내쉬는 숨소리처럼 날씨가 흐린 날에 는 비성석굴에서 나는 콧소리가 더욱 크게 울린다. 날이 좋지 않 은 날에는 바닷물이 30m까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이를 보 고 옛 영산도 사람들은 바다에 나갈 수 있는지를 예측했다. 잠 잠한 비성석굴 소리가 나면 멀리 홍어잡이를 나갈 수 있었다. 비 성석굴을 보기 위해서는 물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바닷물이 어 느 정도 내려가야 완전한 사람의 코 모양을 볼 수 있다. 만조 시 에는 비성석굴이 잠겨 흔한 바위 모습만 보고 오게 된다. 


석주대문 

영산도의 대표적인 해안관광지다. 코끼리 코를 닮아 코끼리 바위라고도 불리고, 뚫린 돌기둥 사이로 관람 배가 드나들 수 있어 멋진 풍경을 이룬다. 옛날에는 중국과 교역을 할 때 이곳을 지나는 배들이 풍랑을 만나면 이 대문 안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이 석주대문 안에만 들어오면 거센 파도도 잔잔해져 잠시 파도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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