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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기억에 숨 불어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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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세트장

자이언트, 에덴의 동쪽, 빛과 그림자, 제빵왕 김탁구의 시대 배경을 모두 찍을 수 있는 세트장이 있을까.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시대이지만 화려함과 빈곤함이 상극을 이루는 드라마들이다. 순천 세트장, 바로 이곳이 그 모든 것을 갖춘 곳으로 앞서 말한 드라마의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매체를 통해 볼 땐 주인공에게 집중해서일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장면들이, 순천 세트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현실세계가 아닌 듯 어색했다. 세트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불과 3-40년 전이지만 그 시절이 생경한 젊은 친구들에게 이곳은 민속촌을 방불케 한다. 생각해보면 100년전 의 생활을 재현시킨 민속촌이 조금 이른 감이 있을 뿐 똑같은 세트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곳 세트장은 다만 유물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촬영을 위 한 세트장으로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간판이 걸려있고 마네킹이 서있다. 주모가 이제 막 내온 사발과 술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소도읍 세트장

순천시 드라마세트장은 지난 2005년 옛 군부대가 있던 조례동 일원 4만여㎡ 부지에 60~70년대 달동네와 60년대 소도읍, 80년대 서울 거리모습 등을 조성했다. 특히 소도읍 세트장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 초 소도시 읍내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번화가 등을 재현한 곳으로 순천시 읍내를, 재현하였다고 한다. 순천 옥천 냇가와 읍내 거리, 그리고 순천의 한식 식당 등을 자세하게 재현해 순천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신선한 소품들도 많이 보인다. 짚신과 광주리, 가마솥은 기본이고 약재들이 매달려 있고 기계 국수집에는 국수기계가 설치되어있다. 색색의 옷감도 전시되어 ‘아직 한복을 입던 때였나?’ 의문을 갖게 했다. 우리가 아는 60년대의 모습은 아마 최신식 문물이 가장 빨리 들어오는 서울의 모습일 것이다. 그 당시 순천은 아직 옷감을 떼 다 옷을 만들어 입었나보다. 만물상엔 감칠맛 미원도 팔고 체증과 폐병에 좋은 약도 팔았는지 덕지덕지 광고 문구가 붙어있다. 

간판마다 일본어와 한문이 많이 써져있는 것이 어쩐지 서글픈 역사의 현장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순천세트장을 다녀온 후 자료조사를 해보니 드라마 감격시대 촬영으로 한국, 일본, 중국의 옛 모습을 재현해 유난히 일본어와 한자 간판이 많았다고 한다. 들어가는 길목에서 봤던 2014 드라마 ‘감격시대’의 세트장 으로 건물 개보수 공사안내표가 생각났다. 김현중 주연의 이 드라마는 내년 1월 방영 예정이며, 줄거리는 1930년대 상하이와 신의주를 무대로 사랑과 우정, 애국과 욕망에 아파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삼국을 배경으로 어떤 드라마를 엮어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감격 시대 외에도 박보영·이종석 주연의 ‘피 끓는 청춘’ 등이 이곳에서 촬영하고 있다. 순천드라마촬영장 내 순양극장, 동래국밥 등을 배경으로 촬영해 내년 1월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순양극장 근처 80년대 서울 구역은 바리게이트가 쳐져 들어갈 수 없었다. 

순천, 그리고 순천세트장

연계해, 입장객들이 줄지어 찾으면서 새롭게 가치를 창조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방문객들 사이에서 아쉬운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입장료 삼천원의 값어치를 톡톡히 해줬다면 좋았을텐데, 여기저기 관리가 소홀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번 해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처음으로 찾는 관광객이 많아 이익을 봤을지 모르지만, 내년에도 이렇게 관리가 안되어 있다면 잘 된 정원축제에 재 뿌리는 격이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홍보담당자에게도 들린 것인지 얼마 전 기사에 순천시는 이른 시일 내에 드라마촬영장을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60~80년대 추억을 느껴보는 추억의 거리’, ‘국수집, 주점이 있는 추억의 먹거리’, ‘옛날 골목놀이를 통한 추억의 놀이체험’ 등 교육과 관광이 융화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많은 관광객에게 다가갈 계획이라고 하니 내년을 기대해보자.

달동네

달동네세트장은 1960년대 중반의 잊혀져가는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재현하였다. 올라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과 벤치가 세워져 있다. 달동네와 거리가 꽤 멀지만, 실제 달동네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와야 하는 거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서민들이 사는 달동네와 그 애환을 그대로 재현해 순천 세트장에서도 가장 세트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곳이었다.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살았구나’하는 처절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어려웠지만 더불어 살고 정을 나누던 삶의 터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미용실도 서울의 80년대 세트장과 달리 달랑 하나 있다. 사람도 두 명 쯤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이지만 슬퍼보이진 않는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위로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 집이라고 한다. 다른 곳들과 달리 자전거도 앞에 세워져 있어 지금 당장 사람이 나올 것 같다. 사랑과 야망에서 태준, 태수, 미자가 나중에 서울로 올라가 살게 되는 달동네라는데 아마 이들의 집일 것이라 추측 해본다. 옛날 종로 거리 등이 이곳에 만들어져 있는데 돌아보다 보면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이 생각날 뿐더러, 우리 옛날 살았던 모습이 기억날 것이다. 

달동네 세트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든 곳으로 나무를 대어 만든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를 사용해 실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 크기는 작지만 보릿고개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생활하던 시절 비라도 내리던 날이면 가마니, 비닐조각으로 지붕을 덮느라 시끌벅적하고 눈 오는 겨울이면 아이를 등에 업고 9공탄을 새끼줄에 끼어 날라야 했던 순박한 그 시절들을 떠올리게 한다. 

80년대 서울

1980년대의 서울 변두리를 재현한 세트는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아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일제 투약으로 쥐를 잡자, 간첩 잡아 애국하고 유신으로 번영하자는 등 사회책에서 봤을 법한 포스터들도 붙어 있다.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문구이지만 격렬한 말투에서 그 시대엔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짐작케 했다. 마케팅 수법인지 약방들이 모여 있고 미용실이 모여 있었다. 가장 큰 건물이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빛과 그림자’를 봤다면 어떤 건물을 말하는지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순양극장.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앞 간판에 남상미의 포스터가 남아있다. 다른 드라마 촬영으로 주변에 바리게이트가 쳐져있어 아쉽게도 80년대 서울의 번화가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순천만 일몰은 낙조가 예쁘다

순천 세트장에 아쉬움이 남아 정처 없이 차를 몰았다. 평일 3시, 사람이 많이 모일 시간이 아닌데 북적였다. 이곳이 어딘가 했더니 생태공원이다. 순천만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갈대밭이 우거져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다. 순천 도약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 에피소드를 저번 달 인터뷰에서 언급했었다. 다리가 다친 흑두루미를 소년이 치료하는 과정에서 지방 방송국이 도왔고 대대적으로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찾는 순천만을 만들게 된 이야기. 사람의 편의를 위한 인조적 건축물이 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의 전봇대를 뽑고 정원 숲 박람회를 열었다. 자연 그대로의 순천을 관광지로 만들었다. 바로 그 생태공원이었다. 용산 전망대로 올라가자 어느새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든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더니 온통 주변이 빨갛게 물들었다. 순천만 일몰은 낙조가 아름답다. 산을 올라 붉게 물든 것인지 일몰에 비친 붉은 색인지 사람들 얼굴이 따뜻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해에 시선을 뺏겨 연신 셔터 누르기만 바빠 지금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해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산 뒤로 빼꼼히 정수리만 보였다. 들어갈 듯 말듯 애를 태웠다. 동영상을 찍을 심산인지 셔터를 누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무엇을 남기려고 저렇게 찍나 그 표정을 구경하는 나로선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해가 쏙 들어가버리자 서운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우리 모두 마음이 하나로 통한 듯 ‘아!’하고 탄성을 질렀고 그 모습이 우스워 깔깔대며 웃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습은 마음까지 데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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