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 ‘수백향’ 덕분에 백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비옥한 땅을 바탕으로 뛰어난 문화를 일궈낸 백제. 백제 문화유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2,200년 역사의 전남 영암 구림마을을 소개한다.
국사암, 마을 이름의 시작
구림마을은 지명에 대한 오래된 설화 하나가 전해진다. “옛날 마을에 살던 한 처녀가 강가에서 빨래하다 떠내려오는 오이를 베어 먹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부끄러움에 마을 숲 속 깊이 내다 버렸다. 얼마 후 처녀가 다시 찾아가니 비둘기들이 날개로 덮어주고 산짐승들이 먹을 것을 갖다 주며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다시 데려다 키웠는데 그 아이가 바로 도선국사이다. 그 후 숲 속 아이를 내버린 바위를 국사암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비둘기 鳩(구), 수풀 林(림)을 따 구림이라 전한다.”
이 설화를 증명하는 커다란 바위가 실제로 마을 안에 존재한다. 바로 국시암이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이다. 현 씨의 안내를 따라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국사암에 도착하니 억새 같은 거대한 잡초에 둘러싸인 바위가 보인다. 거대한 코끼리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 국사암에 올라가니 마을 주변이 한눈에 보인다. “여기에 조그맣게 보인 구멍이 보이나요? 이것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연구자들이 와서 조사해보니 성혈이라고 합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여자들은 이곳에 구멍을 내면 큰 인물이 될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군요.”
바위에는 아이들 주먹 크기의 여러 구멍이 나 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소원을 빌면 큰 인물을 낳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일본 오사카문화의 스승, 왕인박사
구림 마을 입구에 있는 상대포 옛날 이곳은 영산강을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뱃길을 이용해 일본이나 중국과 교류했다. 당시에는 국제무역항이었던 포구가 지금은 작은 저수지로 변해있다. 일제 때 주변 바다를 막아 농토로 개간했기 때문이다. 작은 못이지만 물속에서 어린 아이만 한 거대한 잉어들이 빛깔을 뽐내며 헤엄치고 있다. 왕인박사는 상대포에서 일본 왕의 초청을 받아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고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 사적 제 13호로 지정되어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구림마을 동쪽 문필봉 기슭에는 왕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왕인 유적지가 있다. 거대한 유원지가 떠오르는 넓은 장소이다. 중앙 사당에는 왕인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사당의 출입구인 백제문을 거쳐 들어가면 오른편에 작은 건물이 보인다. 왕인박사의 탄생과 수학, 학문 전수 기록화가 보관되어 있다. “세 개의 문이 있을 경우, 가장 우측의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반대로 나올 때는 좌측을 통해서 나오고요. 오로지 죽은 사람만이 가운데 문을 이용합니다.”
현 씨는 설명뿐만 아니라 여담을 들며 유적지를 관람하는 재미를 더한다. 그는 왕인박사 추모 행사제 때 직접 영정을 들던 수장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 그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며 연신 안타까워한다.
최초 유약도기의 발견, 구림 가마터
영암에서 사용되고 있는 황토는 인체에 무해한 미생물이 풍부하게 살아있어 ‘생명의 흙’이라 불리고 있다. 예부터 천혜의 자원인 붉은 황토로 만든 영암자기를 보존하고 전시, 재현하는 전시관이 구림마을에 있다. 한반도 최초로 유약을 발라 구운 도기가 바로 구림마을 도기의 가마터에서 발굴되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세운 도기문화센터는 전시관, 판매장, 공방, 가마 등으로 되어있다. 건물 내부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도예를 체험할 수 있다. 한편 작은 공방 안에서는 도예가들이 자기를 빗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발굴된 옛 도기들이나 영암 지역의 도자기역사를 전시하고, 때에 따라 특별 기획전을 갖기도 한다.
명당 중의 명당 도갑사
구림마을 인근에 영암 대표 사찰인 도갑사로 안내한다. 도갑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월출산 자락이 끝없이 이어진다. 남한의 금강산이라는 별칭을 가진 월출산의 기암절벽이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한다. 도갑사는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의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다. 월출산이 도갑산을 품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명당이다. ‘승려’보다는 ‘풍수지리학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가 통일 신라 때 창건했다. 오래된 세월만큼 많은 보수공사의 흔적이 느껴진다. 도색한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단청이 유난히 화려해 보인다. 한쪽에서는 도갑사 템플스테이 간판이 보인다 속세를 떠나 잠시나마 마음의 휴식을 얻고 싶은 수행자들의 신발이 돌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인공으로 조성된 민속촌이 아니라 더욱 자연스럽다. 전통 주택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하다. 돌담길 따라 마을 한 바퀴를 크게 걷다 보면 유난히 한적한 시골 마을 특유의 정취가 묻어난다. 영암이라 하면 으레 월출산이나 벚꽃축제, F1 대회만을 떠올리지만 정자 하나, 돌담 하나에 담긴 이야기보따리에 귀를 기울이면 2,200년 역사의 영암 구림마을에 흠뻑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