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한일시장에서 나오면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용당 아파트가 보인다. 건너편에는 용당 아파트만큼 오래된 것 같은 싱글 분식이 있고 이집엔 ‘싱글’ 아닌 금술 좋은 부부가 살고 있다. 32년 이곳을 지킨 윤이석(65) 김정덕(62) 부부가 바로 이번 주전부리원정대가 찾은 주인공들이다.
+ 32년, 좋은 맛 그대로
오랜 세월 한 가지 장사를 해온 것도 대단한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는 특별한 비법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로 대중의 입맛에 맞다는 점, 그리고 32년 동안 그 맛이 절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부터 젊은 아가씨들도 김정덕씨와 친한 듯 ‘이모,이모’ 부른다. 어떻게 알고 들어오셨는지 궁금했다. 대부분 근처에서 중학교를 다녔거나 어렸을 적 엄마 손 잡고 따라 와서 지금까지 계속 찾는 것이라 한다. 맛이 변하지 않아 다시 찾아도 그때 그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추억을 곱씹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사는 곳을 물어보니 퍽 멀다. 이 맛이 그리워 멀리서 차까지 타고 오셨다고 한다.
+ 싱글벙글해 싱글분식
싱글분식의 이름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번듯한 가게가 되기 전 윤씨 부부는 포장마차에서 장사했다. 포차 이름은 싱글벙글 분식이었다. 두 개의 차를 연결해 포차 한쪽은 싱글, 다른 한쪽은 벙글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어느 날 ‘벙글’포차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 남은 포차로 장사를 하다보니 싱글분식이 되었다고. 오는 사람마다 왜 부부가 함께 일하면서 ‘싱글’인척 하냐고 물어본단다. 장사할 때 불이나면 장사가 잘될 징조라는데, 윤이석씨는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것 같다고 한다.
+ 떡볶이 맛이 변하지 않는 이유
보통 분식집 떡볶이는 떡볶이가 떨어지면 그때 그때 물 넣고 고추장을 넣기 때문에 맛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은 새벽부터 솥에 양념과 떡을 만들어 놓는다. 정해진 분량만 팔고 최고의 품질만을 고집하기 때문. 그래서 맛은 32년째 같은 맛을 유지하고 한 번 들렀던 사람은 다시 와도 똑같은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정해진 양만 팔면서 아쉬운 점은 너무 빨리 팔려서 5시가 안돼서 동날 수 있다는 점.
+ 32년을 봐온 손님들
32년 동안 단골 손님들만으로 가게를 유지하면 주인과 손님들 사이의 친밀감이 남다를 것 같다. 어릴 때 엄마 손잡고 쫄래쫄래 따라왔던 아이가 어느 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도 많이 봐왔던 윤 씨 부부. 그런 아이들이 임신해 입덧하는 날이면 멀리서 아내를 위해 떡볶이를 사러 오는 남편 손님도 부지기수라고. 또 서울에서 여행와 다시 목포를 찾을 때 이 곳을 꼭 들른다는 손님들도 많다고 한다. 그저 맛있게 먹어주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윤씨 부부. 인정에 반해 또 오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 시종일관 싱글벙글, 그들이 미소짓기까지
새벽5시부터 밤9시까지 쉼 없이 일한다는 윤 씨 부부.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싱글벙글 웃으며 그저 고맙다고 답한다. 그들의 웃음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 이유는 웃음 속에 그들의 고생이 묻어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장사를 시작한 이유는 윤씨의 배 사업이 크게 실패해 생계를 위해 포장마차에 분식을 팔며 시작했다고 한다. 자존심도 상했지만 반드시 이곳에서 돌파구를 찾겠다 다짐한 윤 씨 부부. 처음엔 헤맸다. 6개월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손님들에게 이런 맛도 선보이고 저런 맛도 선보였다고 한다. 이런 고군분투 속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냈다. 이 장사를 몇 년만 하고 말 것이었다면 이런 연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때의 고생이 떠오르는지 웃음 짓는 김정덕 씨. 한창 장사가 잘될 무렵 전두환 정권의 정책으로 포장마차를 한 곳에 몰아넣어 꼼짝없이 농협 앞으로 쫓겨날 때 먼저 사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이 가게는 완구점으로 사용하던 터로 포장마차 장사가 잘돼 미리 사둔 곳이라 한다. 가게로 들어오기 전엔 포장마차를 하면서 완구점도 함께 운영했다고 한다. 김 씨는 누구나 처음이 힘들지 그 속에서 이겨낼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이겨낼 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장사가 잘되는지 매출을 물어보니 아들 딸 여의고 집도 마련했다고 한다. 먹고 살만한 정도라고 미소짓는 것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다 들었다.
+ 흔한 떡볶이? 가장 잘팔리는 메뉴는 간장 떡볶이!
가장 유명하다는 국수와 떡볶이를 주문했다. 국수 면을 삶고 계란을 맑은 육수에 휘 휘 저어 다진 양념을 올렸다. 맑은 국물이지만 떡국처럼 깊은 맛이 난다. 오는 손님마 다 국수 한 그릇은 꼭 주문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단무지 모양이 특이하다. 맛도 동치 미 맛이 나 여쭤보니 김치와 단무지는 김 씨가 직접 담근다고 한다. 반찬까지 어느 것 하나 김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너무 힘들지 않냐는 말에 “그래도 좋은 재 료, 내가 직접 하는 것은 다르죠. 손님들은 다 알아요.” 해사하게 웃으신다. “내가 힘든 것보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행복이 더 크지”
+ “5년을 목표로 더 열심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겁니다.”
“도나스는 며느리한테 맡겨요 그럼~”지나가는 말로 젊은 엄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왜 팔지 않는지 여쭈니 남편 윤 씨 때문이라고 한다. 윤 씨는 3년 전 큰 수술을 했다. 척추 안에 종양이 생겨 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신경을 누르던 종양 때문에 지금은 한 쪽 팔이 불편하다. 도너츠와 함께 김말이, 고추튀김도 인기상품이었지만 모두 다 윤 씨의 주종목으로 부부 둘만의 힘으론 다시 만들기 어렵게 됐다. 아직 손녀가 9개월이라 며느리도 일손을 돕기 벅차다. 그래서 윤 씨 부부는 5년은 있는 힘껏 버티기로 했다. 그 사이에 메뉴가 점점 줄어들지도 모른다.
마음 건강한 어른들을 만나고 오니 젊은 에디터들도 불끈불끈 용기가 솟는다. 그들이 세상에 주는 인정만큼 세상도 그들에게 힘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씨 부부의 건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