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날에 떡국을 먹을까. 설날 세시음식으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느 지역을 가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떡국’ . 가래떡을 길게 뽑아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육수에 끓인 설날 음식인 떡국의 유래가 궁금하다. 설날이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끗한 흰떡을 끓여 먹은 데서 지금의 떡국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 또 이날 먹는 떡국은 첨세병(添歲餠)이라 하여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떡국의 하얀 떡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천지만물이 새롭게 탄생하는 새해의 첫날에 흰떡을 먹었다. 또 떡을 길게 뽑는 의미는 떡을 쭉쭉 길게 뽑듯이 재산도 그만큼 많이 늘어나고 무병장수하라는 의미가 있다. 동그랗게 떡을 써는 이유는 엽전처럼 생긴 떡국을 먹으면서, 맞이하는 새해에도 돈이 잘 들어와 풍족해지기를 바라는 조상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새해 특집으로 ‘떡국’을 찾아나선 주전부리 원정대. 하지만 이곳은 ‘새해 특집’이라고 쓰기 무색할 정도로 사시사철 떡국이 잘 팔리는 곳이다.
‘집에서 먹는 떡국 같다’라고 하면 약하다. 집에서 먹는 떡국보다 맛있다. 필자만 이렇게 생각한 줄 알았더니 많은 블로거들이 ‘우리 집에서도 이렇게 떡국 좀 만들어야 할 텐데’라며 감탄 반 한탄 반 내쉰다. 엄연히 맛좋은 고깃집임에도 ‘더 맛 좋은 떡국’ 때문에 ‘떡국집’으로 유명세를 탄 ‘송원 숯불구이’, 이곳이 주전부리 원정대가 찾은 맛집이다.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한 김명숙(59) 한연택(61) 부부. 떡국이 나오기 전에 인터뷰라도 할 요량으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자신감 넘치는 대답이 나왔다.
“맛 보시고, 들어간 재료 보시면 충분히 글 쓰실 수 있습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맛을 보고 알아내자 싶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떡국 그릇을 바라보았다. 송원에서 끓여낸 떡국은 크기부터 다르다. 양이 너무 많아 큰 그릇에 나올 것을 두 개의 그릇으로 나눠 담았다. 숯불구이 가게에 “떡국 먹으러 왔다”라고 말해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떡국을 찾는 손님들이 즐비했다. 희뿌연 가게 안에 떡국을 주문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들은 온통 떡국이 었다.
+ 난질난질 떡살
처음 여기 송원의 떡국에 대한 평가로 ‘난질난질한 떡살’이라는 표현이 많았다. 도 대체 ‘난질난질’은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다. 물론 먹어보면 떡살이 난질난질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제껏 떡국은 국물 맛으로 먹었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 신하건대 떡국은 떡의 맛이다. 저렴한 표현으로 ‘헐!’을 외치며 맛보았던 떡살. 끓여 먹는 떡이 부드러우면서 쫄깃하기가 쉽지 않은데, 송원 떡국은 말 그대로 난질난질하 다. 불친절한 설명일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맛보기 전엔 모르는 느낌이니까.
이런 떡살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서 쓰는 떡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 김명숙 씨는 ‘밥먹는 쌀보다 더 좋은 쌀’로 날마다 떡을 뺀다. 하루 빼는 양은 60킬로 그램 정도. 가게 뒤로 숨어있는 방대한 쌀의 양을 보면 얼마나 쌀을 많이 쓰는지 짐 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메뉴를 보아도 이만큼 쌀이 필요한 음식은 떡국밖에 없다. 또 이곳 곡성에서 나온 쌀을 쓰니 직접 도정과정도 알 수 있다. 가게 주인이 얼마나 깐깐하게 재료를 고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국물의 맛이 다른 이유
전라도에서 석화가 들어있는 떡국을 보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송원 떡 국의 시원한 맛에 ‘당연히 석화가 들어있겠지.’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석화 대신 새우가 들어있었던 것. 맛과 색감도 좋지만 새우 살 씹히는 감각이 물컹한 석화 를 먹었을 때와 차원이 다르다. 송원식당도 처음엔 석화를 넣었다고 한다. 석화를 넣 으면 개운한 맛과 독특한 향이 국물 맛을 깔끔하게 한다. 하지만 의외로 석화를 싫어 하는 손님이 많아 새우로 바꿨다. 석화의 시원한 맛이 없어졌지만 국물에서 느끼한 맛을 느낄 수 없다. 바로 고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의 사골이나 다른 부위의 고기 국물과는 달리 개운한 맛이 나는 이유는 암소 한우의 등심으로만 국물을 우려내기 때 문. 등심으로 국물을 우리기 때문에 텁텁한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 첨세병, 떡국처럼
30년을 찾는 손님들도 있다. 그들의 나이만큼 이곳 떡국도 나이를 먹는다. 맛이 혹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의심할 수도 있지만, 30년을 지킨 식당이라면 이유는 두 가지 가 있을 것이다. 정말 맛있어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거나 계속해서 주종을 바꿔 새 로운 가게처럼 보인다거나. 송원숯불구이 집은 맛집답게 당연히 전자이다. 30년이나 된 식당이지만 요령피우지 않는다. 김명숙 씨는 그리 사근사근한 편은 아니다. 하지 만 우직하다. 재료에 대해 절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암소한우, 국내산 재료, 깨끗 한 관리 등 그 고집을 지켜내려면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먹어보시랑께 요!” 할 만 하다. 첨세병, 그녀가 만든 떡국처럼 그녀도 나이가 들었다. 분명 힘들 법도 한데, 많은 손님들이 스스로 블로그에 올릴만한 맛이었다. 미각이 춤추는 떡국에 대 해 자신했던 김명숙 씨에게 완전히 졌다. 연륜까지 묻은 정직함에는 당할 길이 없다.
이제 2014년이다. 떡국에는 묵은 때를 씻고 흰색처럼 깨끗해지자는 뜻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해가 뜬 만큼 우리 마음속 묵은 때들도 씻어버리고 깨끗한 마음만 만들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