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돈을 주고 무언가를 살 때 후기를 찾아본다. 그게 기저귀가 됐든
차가 됐든 말이다. 조회수가 높은 후기가 그러하듯 여기도 좋은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인터뷰는 진
도에서 열리는 ‘토요그림경매’ 즉, 그림 경매에 대한 후기다.
사는 곳도, 회사도 서울인데 진도에서 열리는 주말 경매에 매주 가는 게 가능한가?
매주 현장경매에 참여 하는 건 아니다. 현장에서 구매한 작품은 두 점 뿐이다. 그 이후로는 인터넷을 통해 작품을 확인하고 경매는 전화로 진행한다. 미리 구매 의사가 있는 작품 목록을 큐레이터에게 전해 두면 우선권이 생긴다. 나보다 높게 부른 사람이 있으면 경매사에게 진행 의사를 묻는 전화가 온다. 여기서 포기하면 현장에 있는 사람이 작품을 사는 식이다.
처음 구입한 작품이 궁금하다. 얼마 주고 샀나?
첫 작품은 5만원에 낙찰 받았다. ‘토요 경매’에서 오만원 이하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오만원이면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었고 작품도 마음에 들었다. 작품을 본 지인들이 부러워하더라. 당신이 봐도 부러워 할 거다. 내가 알기로는 그 작품 정가가 20~30만원이라고 알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수백만원어치를 샀는데 그 도화선은 오만 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다.
그림경매는 멀고 어렵다. 왜일까?
말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매 중에서도 특히 그림경매를 말하면 ‘소더비 경매’를 떠올린다. 소더비 경매의 특징은 비싸고 엄숙하다는 거다. 아파트 경매 어떤 느낌이 드나? 최소한 어렵다는 느낌은 없다. 그런데 그림경매라고 하면 소더비 경매가 떠오르면서 비싸다고 느낀다. 그림경매는 부호들이나 가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매란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도예술은행이 진행하는 ‘토요그림경매’는 경매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적으로 경매 시작가가 낮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에 대한 안목이 없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 경매에 참가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안목이 없는 사람이 경매를 통해 예술품을 사는 건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페라나 서양 음악들은 ‘클래식’이란 이미지 덕분에 대중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금난새가 어떻게 했나?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었다. 거장의 음악을 부드럽고 쉽게 풀어서 대중에게 전달한다. 재미있는 뒷이야기도 곁들여서 말이다. 어른들도 좋아하지만 아이들도 너무 좋아 한다. 토요경매도 그렇게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순수예술작품을 경매와 결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순수 문학작품을 스토리텔링화 시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시도가 있다면 안목이 없는 사람도 경매에 참여 할 수 있지 않겠나?
예술을 하는 사람도 굴지의 회사도 요즘은 지방으로 가는 추세다. 하지만 추세와 실상은 다르다. 대세는 아직 수도인 서울에 있다. 그 지역이나 패키지 여행객이 아닌 누군가가 남도 그림경매에 참가하려면 그만의 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있다고보나? 있다면 그 매력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나는 좀 특수한 경우다. 개인적으로 가거나 가족끼리 간 것이 아니라 전남공무원 교육원에 학생들을 이끌고 진도 답사를 갔을 때 알게 됐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두 번 더 갔다. 첫 작품을 산 건 세번째다. 처음에 가서 대번에 살 수도 있지만 일단은 나도 사람이라 거리를 두고 살펴봤다. 토요그림경매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직접 가봐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생기고 작품을 구매 할 수 있으니까. 그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런 가격에 이 좋은 작품을 낙찰 받는 순간에 오는 쾌감이 무엇인지. 이건 마약이나 마찬가지다. 얼마 전 15만원을 주고 작품을 구입했다. 정가는 30만원이라고 알고 있다. 나는 그 작품을 1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안 판다. 세상이 30만원이 정가라고 하는 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이 작품에 가치를 주면 15만원에 샀더라도 그 작품은 10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게 그림경매의 매력 아니겠나? 작가의 손을 떠나 정당한 경매를 통해 구입한 개인의 소유인데 그건 내 마음인 것이다. 나는 내가 구입한 작품의 가치가 시장 논리에 좌지우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만의 가치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많이 샀다. 이 정도 작품들을 이런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서울에 비슷한 취지를 가진 경매가 단발적인 이벤트로 진행되지만 분야도 깊이도 다르다. 동양화나 전통순수예술 작품으로 경매가 진행 되는 곳은 진도뿐이다. 그것도 이런 황당한 가격이라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구매 만족도는 별 다섯 개 만점에 몇 개인가?
5개다. 형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만족한다. 이런 프로모션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준 별점을 이해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그림경매에 참가하게 될 사람들도, 진심이다.
불만이 없다는 건가?
작품과 가격에 있어서 불만은 전혀 없다. 있다면 작가에 대한 소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전화로 듣는다. 영상에 작가가 나와 자신을 소개하고 작품을 설명해주면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작가들이 싫다고 할 수 있지만 작품을 구매하는 입장에선 구매 의사를 결정 짓은 중요한 정보가 된다. 작가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이야기한 영상만큼 좋은 정보가 어디 있겠나. 실제로 토요경매에 갔을 때 특가로 나온 작품을 작가가 직접 들고 나와 설명하고 자기소개까지 하는 걸 봤다. 그 작품은 바로 팔렸다.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해 작품을 고르는 나 같은 사람은 홈페이지에 나온 작가의 간략한 수상 이력과 작품 사진이 전부다. 심지어 작가의 사진이 없는 경우도 있다.
토요 경매에 애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운영을 맡고 있는 남도예술은행에 조언을 한다면?
남도예술은행이 작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강화해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볼 줄 알겠나. 결국에는 그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백남준이 피아노 연주 중 갑자기 무대 뒤로 가더니 도끼를 들고나와 피아노를 부신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보낼 거다. 만약 내가 같은 행위를 했다면 사람들은 나를 경찰에 신고할 거다. 여기서 도끼로 피아노를 찍는 행위가 토요그림경매에 나온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작품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작가는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홈페이지에 작가의 이력이 나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품에 따라서 작품의 매력만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작가에 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동반됨으로써 구매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품이나 작가의 이름값에만 매몰되는 분위기를 남도예술은행이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을 원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작품을 고르겠나? 그 작가를 본다. 그런데 그 작가가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겠나. 홈페이지나 기타 자료들에서 볼 수 있는 건 딱딱하고 형식적인 내용들이다. 어떻게 풀어서 구매 욕구까지 치닫게할 수 있느냐가 남도예술은행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운영이 아쉽다는 건가?
서울 시장 박원순은 사무실을 계속 이동한다. 첨예한 민원의 현장에 사무실을 만들고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서울 시장도 사무실을 옮겨 다니며 시정 업무를 보는데 그림경매라고 못할 건 없지 않나? 다른 예를 들면 경상북도 영양군의 가장 큰 축제인 고추 축제인데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한다. 그들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 것이다. 토요그림경매시장도 조금 더 과감한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 년에 12회 정도 타 지역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와의 접촉 빈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거다. 운림산방도 좋지만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9개월 간 15작품을 사는 동안 노하우가 생겼을 거 같다. 알려줄 수 있나?
물론이다. 나에게 이런 것들을 물어보러 온 것이 아닌가? 나는 비싼 작품들은 안 산다. 소장의 가치가 떨어진다. 왜냐하면 반등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종가를 친 작가들 같은 경우에는 더 이상 오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작가의 작품을 구입 했을 때. 너무 유명한 사람들의 작품에 연연하는 것도 좋지 않다. 물론 작품이 마음에 들면 살 수는 있지만 소장 가치만 놓고 보았을 때 아직 발굴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사는 편이다. 전문가가 흘리는 정보를 넘겨듣지 마라. 개인의 취향과 판단 그리고 큐레이터가 주는 정보가 결합된 결정이라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니까. 당신에게 이 경매는 중요해 보인다.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를 통해서 예술도 알게 되고 이렇게 먼 땅 끝에 걸출한 예술인들이 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 모든 인재들이 서울에 모여 있는 대한민국이다. 땅 끝에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내놓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경이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