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롤랑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 中-
평온한 일상에 찾아온 균열,
‘카눈, 볼라벤, 덴빈, 산바…’ 이들 단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가슴을 졸였다. 직장인은 지하철 역사가 물에 잠겨 회사에 지각할까봐 근심했고, 중년 가장은 세찬 비바람에 부실한 지붕이 내려앉을지 몰라 불안스레 천장을 응시했다. 초등학교, 심지어 중고등학교까지 휴교령을 내린 채 숨을 죽였다. 한편, 농부들은 밤낮으로 논밭과 과수원, 비닐하우스를 둘러보며 전전긍긍하느라 두 볼이 야위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곁불을 쬐듯 라디오와 TV에 눈과 귀를 모으고 태풍의 경로를 확인하는 일이 전부였다.
‘지난여름’이 몰고 온 태풍으로 그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바로 전라남도다. 대부분이 농업을 근간으로 삶을 이어가기에 태 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찾아오면 개인의 삶에 생겨나는 경제적 정신적 균열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농업기술의 발달에도 불 구하고 땅을 일구는 일은 여전히 하늘에 의존하는 탓이다. ‘살아 있는 괴수’를 대하듯 태풍의 위력을 낱낱이 열거하던 날들 이 지나갔다. 네 번의 태풍은 모두를 힘겹게 만들었지만, 일 년 내내 수확할 날만을 기다려온 과수 농가의 상심은 어느 곳보다 깊었다.
시련의 틈새로 보이는 타인의 삶
남도 여기저기서 ‘태풍피해 복구’라는 말이 고유명사나 유행어처럼 나돌았다. 나주 에 위치한 배 과수농가로 취재를 나서야 하는데 금세 마음에 쇳덩이로 된 집 한 채가 내려앉는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삶을 이루는 일부라는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20년째 배 과수원 ‘하늘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신중철 씨를 만났다.
거듭 불어온 태풍으로 피해가 크시죠?
일 년 배농사가 완전히 손해났어요. 올 해 태풍 피해가 너무 커서 내년 농사지을 일이 답답해요. 태풍이 계속 몰아치니까 과일들의 피해가 상상할 수도 없어요. 지난봄부터 벌써 네 번이잖아요.
현재까지 과수원이 입은 피해액은 어느 정도인지.
우선 면적 2천 평만 따지자면 육천만원. 다른 곳까지 합치면 그 손해가 억대 가까이 된다고 봐야죠. 저희는 현재 4천 평 정도의 면적에 배 농사를 짓고 있어요.
올해 피해를 만회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배 농사는 그 특성상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요. 한번 실패하면 3-4년 수익을 내야 한 해 본 손실을 겨우 회복할 수 있어요. 가령 내년에 1억을 번다고 하면 5천 만원은 투자비용으로 들어가요. 나머지 5천만 원을 순익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말로만 5천 만 원이지, 또다시 여기저기 들어가고 나면 1~2천만 원 정도 남겠죠. 그 돈을 몇 년 동안 모아야 한 해 손해를 만회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한번 실농하면 굉장히 힘들어요.
혹시 과거에도 이렇게 큰 피해를 본 적이 있나요?
과거에는 없었어요. 바람이 웬만큼 불어도 낙과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자연에 가깝게 재배하니까 잘 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어지간한 바람에도 거뜬 했는데…
이번 태풍 피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아직 결정된 건 없고… 농협 농작물재보험에 가입했으니 거기서 보험금이 좀 나오겠죠. 정부지원은 별다른 게 없어요.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가정에 학자금을 주는 정도…
배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 텐데.
농업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참 힘들어요. 처음에는 도시에서 조금한 사업도 하고 그랬는데, 농촌에 와서 살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정말 힘든 것 같아요.
하늘농장에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배를 키워 왔다고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저희 과수원은 농약을 안 해요. 옛날부터 액비나 영양제를 발효시켜 사용했어요. 그러다가 올해부터는 무농약으로 재배 방식에 변화를 줬어요. 또 무지대라고 과실에 봉지를 안 씌우고 시도해 봤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태풍이 불어 완전히 실패했죠. 봉지를 안 씌우면 배가 햇빛을 받고 자라서 더 싱싱하고 건강하겠죠? 영양소도 많고. 그래서 봉지를 씌우지 않았는데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어요.
아내분이 이번 태풍으로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듣자하니 ‘아내의 잔소리’가 그 동안 건강한 배를 길러 내는 데 한 몫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우리 집사람이 일을 거의 도맡아 해요. 배 농사는 여자들 일이 많아요. 남자들은 농약하고 가지치기하는 것만 하면 되죠. 백번의 손이 가는 일 중에 남자가 일곱 여덟 가지만 하면 된다면 나머지는 여자들이 전부 해요. 그래서 아내에게 늘 미안하죠. 아내가 아프다고 하면 제 가슴이 뜨끔거려요.
최근 농촌에 인력난이 심하죠?
인력난이 너무 심해요. 특히 봉지 쌀 때가 되면 더하죠. 그래서 봉지를 예쁘게 빠르게 싸는 방법을 특허 출원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배 봉지 싸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거든요. 숙련된 일꾼들이 14시간 이상 작업을 해도 4천장 정도밖에 못 싸요. 그래서 봉지 씌울 때만 되면 난리가 나죠. 요새는 광주에서 아주머니들이 많이 오시는데, 그분들은 봉지를 씌우라고 하면 그냥 똘똘 말아놓기만 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배 봉지가 터져버려요. 그럼 상품성도 떨어지죠.
힘든 고비가 많으셨지만 지금껏 꾸준히 배 농사를 지어 오셨잖아요. 앞으로 어 떤 바람이 있으신지.
저는 농업이 첨단산업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생명공학이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농업에서는 양적인 것만 추구해왔잖아요. 이제는 우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농업의 질적인 면을 추구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우리 자신에게 가장 좋은 먹을거리,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내야죠. 사실 농업만큼 첨단 산업으로 여겨져야 할 분야가 없어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런 인식이 제대로 자릴 잡지 못해 안타까워요.
이제 어떤 일들을 해나갈 생각이시죠?
낙엽이 지면 또 가지치기부터 해야죠. 배 농사는 일 년 내내 매달려야 해요. 다른 과수 농사도 그렇겠지만 특히 더 그래요. 이제 내년 농사를 대비해야겠죠. 태풍에 허물어져 내린 지붕도 보수해야 하구요. 비록 올해는 배를 수확하지 못 했지만 일은 계속해야 하니까 또 바쁘겠죠.
시련의 틈새로 보이는 타인의 삶
고통을 겪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는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존재 한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 깊은 속내까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한 사회 속에서 서로가 서 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점을 확인할 기회는 기쁨의 순간보다 고통의 순간을 함께 할 때 찾아올 것이다. 지난여름 태풍을 호되게 겪은 남도에 남은 것은 일상에 그들을 드리운 공허와 상실감이었다. 또한 인간은 자연 앞에서 지극히 무기력하다는 상투적인 진실을 체득하는 일이었다.
최근 귀농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하지만 농업에 대한 저평가는 사회적 통념으로 여전히 내밀하게 꿈틀거린다. 농촌의 인력난은 이미 고착화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농사꾼, 농업이 갖는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오간데 없이 그저 ‘그게 현실’이라고 부르는 2012년. 지나치게 비관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땅을 의지해 살아온 반 평생을 이제 와 다른 곳에 의탁할 수 없어 그저 살아간다는 농부들의 넋두리가 무성하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인해 남도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농부들의 고단한 삶이었다. 하지만 일상은 흘러가고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남도의 농부들은 다시금 이듬해 농사 준비로 분주하다. 농업이 좋아 20여년 동안 농촌에서 살아온 배 농사꾼, 신중철 씨. 그가 특별한 정성으로 길러낸 달고 아삭한 배는 그동안 타인의 삶에 건강과 즐거움을 선물해왔다. 하지만 얄궂은 네 번의 태풍으로 한 해의 수확을 모든 잃은 시련 앞에서 그는 그저 ‘타인’으로만 남아 있다. 이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함께’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이루는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