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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리얼리티 소설가 정유정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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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요동치고, 마구 성을 냈다 

그녀의 소설을 읽는다. 이야기가 실제인지 가상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만큼 전개가 빠르고 묘사가 정확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 철저한 조사와 한 분야에 대한 마스터, 전문가를 끈질기게 잡아 물고 떨어지는 끈기와 감수까지. 소설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풍성하고 살아있다. 

그녀는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를 통해 청소년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 인식으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도 청소년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그녀는 한 번 더 등단을 준비한다. 2009년 ‘7년의 밤’을 통해 그녀의 이름은 세상에 빛을 받기 시작한다. 그녀는 7권의 책을 쓰면서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지만 달라지지않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을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서사의 문학이 아닌 섬세한 묘사로 구성된 이야기 소설, 소설의 바탕이 되는 자유의지 테마,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는 사회의 질탄이 두려워 거짓을 쓰지 않을 것, 진실만을 담을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뺄셈의 작업으로 소설의 군살 빼기. 

요즘 유명새 실감 나느냐. 

내가 사는 광주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 7년째 다니고있는 복싱 관장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동네분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 유명새를 9월에 갔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가서 실감했다. 9월 히말라야는 우기 시즌이라 비성수기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을 포함하여 한국인 트레커들도 적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700미터를 시작해서 5천 400미터 고지를 앞두고 한국인 한 명을 우연히 만났다. 가이드도 없이 배낭만 메고 산을 오르는 한국인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내가 정유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반가워하더라. 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고. 고산병이 와서 헤롱거리는 상태에서 사인과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청년이 선물을 주겠다며 가방에서 무엇을 꺼내주는데 한국 라면이었다. 알다시피 외국 나가면 라면만큼 귀한 음식이 없지 않느냐. 그때 내 소설을 사람들이 많이 읽고 있구나 실감했다.

오전에 태어나고 자란 곳을 둘러보았다. 

함평이 함평이 아닌 거 같다. 15살 때 떠나고, 삼십 몇년 만에 내려왔는데 많이 달라졌다. 살던 집은 그대로인데, 주변 거리와 차도가 바뀌었다. 네팔 가니깐 내가 살던 딱 그때 함평 같더라. 오토바이 다니고, 말이랑 소가 막 섞이면서. 이제는 그런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터 쪽으로 버드나무 길이 쭉 있었는데 사라지고. 모교 기산초등학교도 갔다 왔는데 지금은 한 학년당 5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분교로 변했다. 안 없어진 게 다행이더라. 내가 다니던 당시만 해도 2개 반밖에 안 되어 학년 모두가 알고 그랬는데. 

어릴 적 고향 친구들은 성공해서 돌아온 작가에 대한 반응은? 

연락을 해본 친구들이 없다. 출판사에서도 번호를 잘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마 어릴 적 친구들은 내가 소설가가 된 지도 모를 것이다. 

함평에서의 유년시절 추억이 있다면? 

내가 쓴 ‘11살 정은이’가 바로 함평 내 유년시절 이야기다. 마을을 헤집고 다니면서 오만 말썽 다 피우고. 당시 엄마 친구분들이 너는 안 죽고 멀쩡하게 큰 게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팔 부러지고, 불 피우다 머리 태우고. 그때의 경험들이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 도시에서 자란 작가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점이다. 어릴 적 여장부 성격이 필체에도 드러난다. 모르는 사람은 내가 남자 작가라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쓰고 싶다. 원래 자체가 여성스러운 소설을 좋아하지도 않고 

빠르고 간결한 필체를 사용하는 이유. 

필체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내가 현란한 수식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직구로 곧장 쓰고,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내가 추구하는 모토가 바로 그것이다. 필요한 문장만을 쓴다. 보통의 작가들은 문장 자랑을 많이 한다. 문장은 이야기를 위해 공모해야 한다. 내가 쓴 문장은 소설마다 똑같으면서 다르다. 7년의 밤은 차갑고 건조하고 이성적이다. 반면 28은 뜨겁고 감성적인 문장을 쓴다. 내용에 따라서 이야기의 톤이 달라지되 기본적인 원칙은 필요한 말만 쓰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60대 할아버지까지 두루 읽는 쉬운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쉽고 대중적인 소설은 비평가들의 타켓이 되기 쉬운 법인데. 

많이 당한다. 쉬운 소설은 비평가들이 할 말이 없으니 입에 많이 오르내린다. 7년의 밤까지는 그런 비평들이 많았으나 이번 28을 내면서는 줄어들었다. ‘정유정 작가론’, ‘28론’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요새는 많이들 인정해 주는 추세이다. 그래도 하는 사람들은 한다. 속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깐. 그래서 이번 28을 내놓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나도 사람이다. 28을 쓰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더니 무기력증에 빠졌다. 그래서 히말라야로 떠났더니 너무 힘이 들어서 다른 잡생각이 자동으로 안들더라. 히말라야 경치는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절경이 아름다웠다. 

소설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소설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잘근잘근 씹는 독자들도 많다. 어떨 때는 운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나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으니깐 그것으로 위안으로 삼는다. 내 소설의 목적은 한번 읽으면 끝장을 보게끔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독자님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쓴다. 독자들과 연애하듯 밀당하며 끝까지 읽고 넘기도록 한다. 낚시질하듯 따라와, 따라와. 그래서 문장이 굉장히 빠르고 간결하다. 주로 그런 효과를 얻기 위해 화장실 저질 유머를 쓴다. 어디서 본 재미난 유머는 나중에 소설에 꼭 사용한다. 나 자신도 그런 유머를 좋아하고. 7년의 밤, 28도 많이 나온다. 동해한테 그런 유머를 순화시키기 위해서 썼더니 더 무섭다는 독자들이 많다. 

연애소설 가볍고 동화 같은 얘기도 있는데, 무섭고 어두운 소설을 주로 쓰는 이유. 

무섭고 어두운 소설만을 쓰는 건 아니다. ‘내 인생의 스프링은 캠프’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는 성장소설이다. 대표작이 7년의 밤, 28같은 어둡고 무서운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강하다. 나는 악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인간이 언제 사악해지는지, 그 악이 발현되는 때는 언제인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불편해한다. 인터넷에서 보면 도덕군자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자는 싫어할지 몰라도 작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 

28에서 수진이가 성폭행을 당하고 총에 맞아 죽는데 간혹 독자들은 왜 주인공들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지 못하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여자와 어린아이다.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명실공히 대표 여성작가가 되었다. 공지영, 신경숙 같은 여성 작가들과 비교하지 않느냐. 

비교한다. 하지만 나는 신경숙 작가와 공지영 작가와는 필체부터 다르다. 그분들은 여성스럽고 섬세한 소설을 쓴다. 하지만 나는 거침없고 명확하고 남성적인 소설을 쓰는 점에서 명확히 비교된다. 

단편이나 다른 장르의 소설 쓸 생각은 없느냐. 

나는 단편이 잘 맞지 않다. 아직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일정하게 호흡을 길게 풀어쓰는데 단편은 엄청 빡빡하게 쓴다. 단편과 장편 둘 다 잘하는 소설가가 있을까. 스티븐 킹 작가 같은 경우는 장, 단편 둘 다 잘 쓰긴 하지만. 여행 에세이나 가벼운 산문은 쓸 생각이 있다. 

남편 등장. 큰 눈에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글로 많이 뵙다. 작가님 인터뷰 때 많이 등장하시더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다. 

하하하. 일간지, 주간지 인터뷰를 나가면 기자님들이 많이들 물어본다. 연애는 어떻게 했느냐. 많이 싸우지 않느냐. 아무래도 재미있는 이야기니깐 남편에 대해 많이들 물어본다. 

아내가 유명해졌다. 어떠하냐. 

남편 / 좋다. 주변에서는 아내가 돈 많이 벌어오겠다고 부러워한다. 

아내로서 작가는 어떠한가. 

남편 / 보는 그대로이다. 일본에 있는 아들 포함해서 우리 세 식구는 모두 따로따로 노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아들에게 무엇이 되어라, 무엇을 해라 시키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스타일이다. 오히려 내가 더 아들을 챙기는 편이다.

아내를 기다리느라, 오늘 온종일 주변을 배회했다고. 

남편 / 아침 9시에 와서 하루 종일 이러고 있다. 밖에 나온 지 지금 8시간이 다 되어간다. 저야 가끔 이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일도 보고하는데 아내는 당사자이니 괴로울 것이다. 서울은 한 번 올라가면 여러 스케줄을 한꺼번에 잡고 일을 하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어한다. 오늘은 그나마 광주 인근이라 차를 조금만 타서 덜 힘들어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두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다. 유명 작가이자 한 남자의 아내, 그 여자를 아내로 둔 남편. 오랜 세월 함께하며 웃는 모습도 닮은 두 사람은 영락없는 해맑은 친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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