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보통의 존재’는 흔히 격려와 위로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외부로 돌려진 시선은 때때로 적잖은 가슴앓이를 낳는다. 쉽사리 그칠 줄 모르는 마음에 부는 서늘한 바람. 그늘 속 에 낮게 웅크린 나를 일으켜 세워 환히 바라보는 시간. 손 떼 묻은 책들이 나에게서 멀어진 나를 불러 세우는 곳, 북카페 ‘에코의 서재’를 찾았다.
2011년 11월 18일. 목포 평화광장에 최초로 북카페가 탄생했다. 북카페 ‘에코의 서재’를 탄생시킨 사람은 목포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생활했다는 김영란 씨. 그녀는 최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책과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열었다. 어느 볕 좋은 가을날, 산책을 나서듯 에코의 서재에 들러 그녀가 써내린 열정이라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영란 씨네 책과 함께 하는 ‘자기만의 방’
30년 넘게 서울에서 살다 고향 목포로 내려와 보니 북카페가 한곳 도 없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게 책이랑 여행이거든요. 책을 보면서 차를 마실 공간이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내가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자’ 마음먹고 바다가 보이는 평화광장에 북카페를 열었어요. 이곳은 책이 있기 때문에 시작된 공간이에요. 만약 누군가 단순히 커피만 파는 카페를 만들라고 권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만큼 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다른 지역을 둘러보면 카페에 혼자 와서 책을 보는 이들이 많아요. 그런 모습이 꼭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둘보다는 혼자 있을 때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 쉽잖아요. 혼자 와서 책을 보고 바다를 보며 사색할 줄 아는 이들이 더 많은 꿈을 꾼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누구든 혼자 와서도 쑥스럽지 않게 책을 보고, 자신만의 멋진 꿈을 꾸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카페 내부에 있는 책들은 모두 제가 살면서 읽어온 책들이에요.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부터 일상적으로 봐왔던 것들이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나고 책을 구입할 때 큰 보람을 느껴요. 좋아하는 책들을 한 권 한 권 사서 모아두고 집에서 읽어오다가 북카페를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한마디로 제 책들이 그냥 ‘이사’를 온 거죠. 또 수십개 국의 여행지를 돌면서 소소하게 사 모은 기념품들, 집에서 쓰던 장식장도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카페를 시작하기 위해 일부로 사 모은 인테리어 소품들은 의자와 테이블뿐이에요. 이 공간에 있는 것들은 지난 세월 저와 함께 일상을 살아온, 저만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물건들이에요. 그래서인지 손님들 중에는 이곳을 집처럼 편안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아요. 손떼 묻은 주인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즐거워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바다 위를 뜨겁게 불어라, 청춘!
목포에 내려와 지역의 20대들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건 굉장히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어요. 20대가 많지 않은 도시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꿈꾸고 도전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다른 도시들을 보면 젊은이들의 삶이 굉장히 치열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목포의 젊은이들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무척 안타까웠어요. 젊은이들은 곧 미래잖아요. 변화해야할 주체가 바로 젊은이들 아닌가요? 목포에 내려와 카페를 열기 전에는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했어요. 아주 어린 꼬맹이들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두루 가르쳤죠. 그래서인지 유독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요. 변화의 주체는 항상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해요.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가진 틀 안에서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애쓰잖아요.
목포에서 태어나서인지 제 기억 속 바다의 이미지는 무척 포근해요. 이탈리아나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바다를 보며 위로 같은 걸 받아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보면 바다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거든요. 알제리 바다라든가, 지중해 바다라든가. 그 안에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느끼는 자유로움을 목포의 젊은이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 방에는 대형 세계지도가 걸려 있거든요? 요즘 집에서 쉴 때면 손가락으로 슬며시 목포를 짚어 봐요. 서울은 한반도의 가장 자리지만 목포는 그 끝이잖아요. 목포의 바다에서부터 시작해 유럽의 바다에 닿을 때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봐요. 그럼 묘하게 같은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요즘은 나라와 나라 사이가 가까워져 ‘지구마을’이라는 말도 생겨났잖아요. 유럽의 바다나 목포의 바다나 젊은이들이 꿈꾸며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꿈꿨던 자유를 이곳 젊은이들도 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봐요. 사실 에코의 서재는 목포 젊 은이들을 향한 야심찬 포부로 시작된 곳이에요.(웃음)
책과 책 사이에 놓인 ‘나눔의 책갈피’
제가 돈을 쓰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책을 사고, 여행을 하고, 또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 후원을 할 때에요. 그동안 국제구호기구인 굿네이버스나 유니세프, 목포에 있는 쉼터 몇 곳을 후원해왔어요. 특히 굿네이버스를 통해 타지키스탄에 살고 있는 한 아이를 알게 됐어요. 그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타지키스탄이란 나라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후원 신청을 했더니 아이의 사진이 담긴 우편물이 날아왔어요. 그래서 지도를 보면서 타지키스탄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그 나라에 대해 공부했죠. 1년이 지나자 훌쩍 자란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편지가 날아왔어요. 또 다시 1년이 지나고 나서 고맙다는 편지가 도착했죠. 이렇게 인연을 맺고 나니 나누며 사는 일이 정말 중요하구나 절실히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북카페를 시작하면서부터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코너를 만들었어요.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싶었거든요. 카페를 둘러보면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면 누군가는 마음이 움직여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을 테니까요. 사실 많진 않지만, 후원을 위해 소책자를 가져가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때로는 ‘이곳에 후원을 하려면 어떻게 신청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이들도 있고요. 제게 질문을 던진 이들 중 몇몇은 인터넷을 뒤져 후원 신청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 또 에코의 서재라는 공간 덕분에 우리나라든 해외든 누군가는 좋은 영향을 받게 되는 거잖아요. 내가 선한 일 한 가지를 쌓아서 다른 이의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좋은 변화를 가져다주고 싶어요.
삶이 더, 흥미롭고 가벼워지는 순간
북카페를 시작하고 나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만나게 됐어요. 가끔 어떤 대상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과는 오랜 시간 수다를 떨어요. 관심사가 비슷하면 새벽이 되도록 이야기가 이어지죠. 최근엔 스물여섯 살 친구하고도 여행으로 뜻이 맞아 새벽 까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정말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북 카페를 시작하고 나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죠. 커피 한 잔을 사고팔면 그만인 프렌차이즈라면 기대할 수 없는 선물들이죠. 에코의 서재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손님들과는 굳이 대화를 나누려고 애쓰지 않아요. 서로가 얘길 하다보면 공감하는 부분을 찾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열 명이란 사람이 한 공간에 머물러도 마음으로 끌리는 단 한 사람과만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치랄까.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은 늘 감사하지만, 카페를 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여행을 떠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예요. 이곳이 체인점이라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자유롭게 다닐수 있을 텐데, 개인 샵이라서 그럴 수가 없어요. 이 공간에 주인의 느낌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에 주인의 손길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사실 북카페를 연 후론 제주도로 3박4일 동안의 짧은 여행 밖에는 다녀오질 못했어요. 해외로 여행을 떠나면 최소한 10일 이상은 다녀오곤 하거든요.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 유적지를 둘러보는 편이에요. 7대 불가사의처럼 흥미로운 주제를 찾아 떠나죠. 30대부터 시작했으니 강산이 한 번 변하도록 도전해온 오랜 모험인 셈이죠. 저와 함께 에코의 서재를 꾸려갈 새로 운 식구가 생기면 무릴해서라도 조금은 긴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제가 제 일상에 만족해야만 북카페에 다녀간 사람들도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거든요. 억지웃음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틈틈이 제 자신을 풍요롭게 채울 수 있는 여행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