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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이야기가 산다. 가/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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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조도면 가학항에서 배로 30분 정도 가면 가사도의 모습이 서서히 보인다. 해류의 영향으로 1년 중 절반 이상 안개에 쌓여있는 신비로운 섬 가사도. 해류의 영향으로 1년 중 절반 이상 안개에 쌓여있는 신비로운 섬 가사도. 몸섬 이외에 주위에 15개의 크고 작은 부속도서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이런 특이한 지형으로 가사도는 가사군도를 포함해 넓게는 조도까지 아우른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일단 ‘가사’라는 지명의 어원부터 다양하다. 가새(가위)를 닮아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며, 그 생김이 불가에서 스님들이 장삼 위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 걸쳐 입는 법의인 가사를 닮았다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마을 주민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번째 이야기를 정설로 여긴다.

왕이 지나간다.

가사도에 관한 전설 중 가장 인상적이고,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주민 장상호 씨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가사도 뿐만 아니라 신안 하의도와 조도까지 아우른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러하다. 옛날 제정일치 사회였을 때 큰 스님이 왕이 되기 위해서 옷을 차려 입고, 마지막으로 가사를 걸치기 위해 가사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가사를 찾으러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동자승은 얼른 배낭을 짊어지고 큰 스님을 따라나섰다. 내려가던 도중 갑자기 하늘에서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새들이 나타나더니 “왕이 오신다! 왕이 옷을 입기 위해 행차하신다!”라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신기하게 여긴 섬사람들이 왕을 구경하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 큰 스님 뒤로 졸졸 따라다녔다. 그 중에는 재주에 능한 꾼들이 많이 있었는데, 한 광대가 큰 스님의 행차를 환영하며 탈을 쓰고선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서 장도를 쥔 풍물패가 질 수 없다는 듯이 꽹과리를 두들기며 신명나게 춤을 췄다. 이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북을 꿍꿍 울리며 큰 스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환영했다. 실제로 혈도에 물이 들 때면 뻥 뚫린 암반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북소리와 같다고 하니 그때의 기억을 들려주는 듯하다. 이렇게 큰 스님은 주위의 환영을 받으며 무사히 가사도에 도착했다. 가사도에서 엄숙하게 가사를 입은 큰 스님은 불상 앞에 앉아 목탁을 치며 왕이 되기 전 이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후에 시간이 흘러 스님이 예를 올린 곳은 불도가 되었고, 스님이 두들긴 목탁과 목탁채는 소동도와 대동도가 되었다. 맨 처음 왕이 오신다는 걸 알린 새들은 가사도 주변에 흩어져 조도가 되어 스님을 지켜주는 수호섬들이 되었고, 큰 스님과 동자승은 각각 주지도와 양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환영한 각 사람들은 그 곁에 머물며 광대도, 장도, 송도 등이 되어 가사군도를 이루는 하나의 섬들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구렁이가 사는 노인봉 

노인봉 산기슭에 큰 암구렁이가, 마도에는 숫구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숫구렁이가 노인봉을 바라보다가 바다를 보고 있는 암구렁이를 보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반했다. 두 구렁이가 짝짓기를 위해 바다를 건너려 했다. 그러나 두 섬의 수호신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섬의 균형이 무너질 것을 염려해 하늘의 천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마도에 사는 숫구렁이가 노인봉에 사는 암구렁이를 만나기 위해 여러 번 바다를 건너려 했지만, 그 때마다 천왕이 일으킨 풍랑으로 바다를 건너지 못했다. 오랜 노력 끝에 두 구렁이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하늘이 감동하여 천왕은 결국 길을 열어줬다. 두 구렁이는 혼인을 하여 새끼를 낳았다. 

세월이 흘러 새끼가 다 자랐을 때, 두 구렁이는 천왕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혼자 남을 새끼가 걱정되었다. 두 구렁이는 노인봉에서 승천할 때 새끼 구렁이가 인간세상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해무를 노인봉에 가득 드리워봤다. 남아있는 새끼 구렁이는 노인봉에 머물면서 가끔 그 모습을 드러냈다. 

후에 노인봉 채굴 작업을 진행하는데 굴 입구에 새끼 구렁이가 나타나 작업을 멈추고 음식을 장만해 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를 지낸 다음 날 다시 작업을 위해 동굴에 들어가니 동굴 안에 낙석이 가득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구렁이가 인부들을 구하기 위해 부러 나타난 것 이라고 신성하게 여겼다. 이후에도 가끔 그 구렁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학을 쫒은 스님 

셋방낙조로 잘 알려진 진도 서쪽 지력산에는 옛날 동백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스님이 하루는 해질녘에 수평선 너머 은빛 석양노을과 서쪽 하늘에 훨~훨 날아가는 학 떼를 보게 되었다. 노을을 가로질러가는 학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풍경을 바라보다가 도취되어 잠시 졸았는데 “스님 스님, 저 왔어요”하는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속세에서 사랑했던 여인이 하얀 소복 차림으로 서 있던 것이다. 스님은 너무 반가워 목탁자루도 던져 버리고 법의를 입은 채 뛰쳐나가 여인을 따라 지력산으로 날아올랐다가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승려 이전에 남자였던 것이다. 속세에서 사랑했던 여인의 품이 아련했던 스님은 고귀하고 아름다웠던 학의 자태를 여인으로 착각하고 수행도, 해탈도, 성불이 되려는 욕심도 버리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때 학을 쫓아가면서 산지사방에 흩어진 스님의 가사가 날아가 가사도가 되었다고 한다. 스님의 장삼이 떨어진 곳은 장삼도, 하의가 떨어진 곳은 하의도, 윗옷이 떨어진 곳은 상의도, 발가락이 떨어진 데는 양덕도(발가락 섬), 손가락이 떨어진 데는 주지도(손가락 섬), 그리고 심장이 떨어진 곳은 불도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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